자유 게시판

병원담장을 넘어사는 책날개 달아주기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14-07-08 | hit : 2279

 

“차마 다음에 또 만나자는 인사를 못하고 헤어집니다. 빨리 완쾌되어 퇴원하는 것이 아이들의 소망이라는 걸 잘 아니까요”

“링거를 맞으면서 누워 있는 아이가 책 읽어주는 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이 아프죠”

마치 시간이 정지된 것처럼 병실에서 하루종일, 아니 몇 년씩 지내야 하는 아이들. 자기의 병과 고통에 대해 억울함과 분노를 쏟아내며 죽음에 대한 불안한 상상을 떨쳐버릴 수 없는 백혈병동의 아이들. 이들에게는 ‘학교’나 ‘공부’ 같은 단어가 현실감 없는 먼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립니다. 분명 이들도 성장기 아이들이지만 병마로 인해 교육받을 권리를 잃어버린 것이죠.

2009년부터 유아와 어린이, 청소년까지 3개의 독서교실 이끌어와

지난 2009년 카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는 이처럼 병원에 입원해 있는 어린이와 청소년들을 위해 병원학교를 설립했고, 이때부터 아이들을 만나 책을 읽어주며 봉사해온 자원봉사 선생님들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독서지도연구회(회장 김현애)의 병원학교 담당 독서치료교사들입니다. 지난 8월 27일 13명의 독서교사들은 바쁜 일정을 쪼개 간담회를 열었습니다. 숨 가쁘게 오가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고, 지나온 시간을 스스로 평가하며 더 나은 미래를 도모하는 귀한 자리였습니다.

이들은 매주 화요일과 금요일, 병동 20층 무균실과 11층 일반 소아병동으로 팀을 나누어 4살 유아부터 십대 청소년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아이들과 만나 책을 읽어줍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읽기를 좋아하고 전문 독서치료 훈련까지 받으며 기꺼이 발품을 파는 이들의 가장 큰 어려움은 지속성이 없는 대상과 다양한 연령층을 상대해야 한다는 것. 이날 두 시간여의 간담회에서 쏟아져 나온 병원학교 독서지도교사들의 이야기는 일반 아동과 청소년 대상의 수업에서는 들을 수 없는 생생하고 가슴 짠한 경험담이었습니다.

20층 백혈병동 아이들 수업에 어려움 많지만 보람도 커

특히 수업 전에 반드시 멸균소독을 한 후 양말과 마스크를 착용한 채 백혈병 치료를 받고 있는 20층 아이들과의 수업 소감은 안타깝고 슬픈 이야기가 많았습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기간이 길어 책을 읽고 ‘친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했더니 친구에 대한 아무 경험도 나눌 이야기도 없다고 하는 아이가 있어 가슴이 먹먹했다는 조숙자 선생님.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독서 수업을 기다리던 아이가 갑자기 상태가 나빠지거나 감기에 걸려 결석할 때는 당사자보다 더욱 마음이 아프다고 토로합니다.

초창기부터 5년 째 수업을 맡아왔던 이은주 선생님은 실질적으로 병원학교 독서교사들을 이끌어가는 팀장 역할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어려움이 많고 배워야 할 것도 많다며, 새롭게 이 일을 시작하는 선생님들의 의욕적인 모습에서 큰 힘을 얻는다고. 처음에는 이은주 선생님도 아픈 아이들을 볼 수 없어서 수업도 하기 전에 심장이 뛰고 마음이 무거워서 애를 먹었답니다. 함께 책을 읽으며 낯이 익었던 아이가 어느 날 영원히 병실을 떠났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자기 일처럼 감정이 복받쳐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 고민했던 적도 많았다고. 그러나 이제는 병원학교의 일이 아픈 아이들을 위한 거창한 봉사라는 생각을 버리고 온전히 자신을 위해,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이라고 생각을 바꿨답니다. 스스로 존재감을 작게, 가볍게 하여 무겁고 힘든 현실을 견디는 아이들을 보며 약해지는 스스로를 다잡아 온 것입니다.

‘죽음’에 대한 감수성이 조숙한 고학년 아이들을 많이 상대해 온 임은정 선생님은 무조건 책을 읽어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중간 중간 연결되는 질문과 이야기를 많이 이끌어냈다고 합니다. 수동적인 입원 생활만 하는 아이들이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활동성을 많이 넣어 스스로 무언가를 해냈다는 성취감과 함께 생각을 끄집어내고 소통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지도해야 한다고 조언합니다. 또한 병원학교 아이들과의 독서수업에서는 ‘도서 선정’이 매우 중요하다며 ‘마지막 잎새’라는 책으로 수업을 하다가 민감한 질문으로 분위기를 망쳐버린 실패담도 나누었습니다. 

 ▲ 아이들의 독후활동

13명의 교사들, 수업 경험담, 도서 선정 자료 등 공유하며 서로 격려해

이외에도 ‘피튜니아 공부를 시작하다’ ‘가시고기’ ‘치킨 마스크’ 등의 도서를 통해 저학년 아이들과 북아트 활동 등을 하며 수업을 진행했던 사례와 애환, 슬프고 힘들어도 보람을 느끼며 계속 할 수 있었던 자기만의 이유들을 서로 나누며 간담회의 분위기는 점점 뜨거워졌습니다. 최근 병원 입원의 경험을 한 김현애 회장은 막상 병원에 갇혀있어 보니 모든 사람이 자기만 빼고 일상 속에서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가장 크게 다가왔다고 털어놓았습니다. 병원과 같은 시설에 얽매인 생활을 하는 아이들은 ‘먹을 것’에 대한 욕망도 강하고 매일 마주치는 의사, 간호사, 엄마를 제외한 바깥 세상의 사람을 무척이나 만나고 싶어 한다고 초창기 경험담을 들려주었습니다. 오늘처럼 서로 느낀 점과 사례들, 수업 방법과 도서 선정의 노하우 등을 서로 나누고 소통하는 자리가 자주 마련될 수 있도록 연구회의 게시판과 모임을 꾸준히 지원하겠다는 약속도 잊지 않았습니다.

 세간의 관심이 병마에 시달리는 병원학교의 어린 환우들에게만 집중되고 있는데 사실은 이들을 위해 독서와 미술, 상담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기부를 하는 숨은 봉사자들도 있다는 것을 기억해주기 바란다는 작은 소망. 때론 바쁜 일상이 겹치기도 하고 집안의 대소사와 감기 등에 걸려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못하게 될 때도 있지만 자신이 약속을 지키지 못하면 다른 선생님이 고생을 불편을 겪어야 한다는 생각에 어려운 발걸음을 할 때도 많다는 병원학교 독서지도 선생님들. 그들의 밝고 환한 얼굴이 어리고 아픈 영혼들을 잠시나마 책 속의 꿈과 상상의 나라로 이끌어주는 천사의 얼굴과 닮았다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 서울시교육청 블로그 서울교육나침반. 김현숙기자. 2013. 8.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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