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훈민정음 창제.반포 영화보다 더 극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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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박종은 | 작성일 : 17-10-09 | hit : 1647 | ||||||||||||||||||||
[인터뷰] '훈민정음 전문가' 김슬옹 한글학회 연구위원 "한겨레 모두 보는 영화로 만들자" [오마이뉴스 글:신향식, 편집:김준수] 서울 광화문 광장 세종대왕 동상 왼손에는 책이 한 권 들려 있다. 어떤 책일까. 바로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국보 70호이고 1997년에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마침 올해는 세계기록유산 등재 20돌이기도 하다. 훈민정음 연구가 김슬옹 박사(56, 한글학회 연구위원, 연세대 외래교수)는 "한글을 소재로 영화를 만들면 좋겠다"면서 "훈민정음 창제과정은 영화처럼 극적이기 때문에 영화로 각색해도 훌륭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종대왕이 비밀리에 훈민정음을 창제하고, 2년 6개월만에 해례본이 나오고, 이것이 역사에서 사라졌다 다시 등장하는 과정이 극적입니다. 비밀리에 연구하게 한 것도 극적이고, 15세기에 하층민인 노비 집단이 이 글자를 배울 수 있게 된 것도 기적이고, 해설한 책을 펴낸 것도 기적입니다. 1천만 관객이 아니라 남북한 한겨레 7천만 관객을 돌파하는 영화로 만들면 좋겠습니다."
김슬옹 박사는 "훈민정음 28자만 배우면 누구나 지식과 정보를 나누고 지혜를 발휘할 수 있고, 특히 해례본에는 엄청나게 많이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는데 사람들이 잘 모른다"면서 "훈민정음 창제와 반포 과정을 영화로 만들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새 문자 훈민정음을 알기 쉽게 풀이한 책이다. 세종대왕은 비밀리에 연구하여 1443년에 훈민정음 28자를 만들어 신하들에게만 알렸다. 이후 실험과 연구를 거듭한 끝에 1446년 음력 9월 상순에 <훈민정음> 해례본을 만들어 백성들에게 새 문자 훈민정음과 그것을 만든 원리, 운용 방법을 알렸다. 이 책에는 창제의 취지와 원리, 역사적 의미 등을 비롯하여 문자의 다양한 예시 등이 실려 있다. 김슬옹 박사는 "한글을 배우면 성리학이든 어떤 학문이든 풀어낼 수 있으니 한문으로 지식과 정보를 독점하던 양반들은 훈민정음을 무서워했을 것"이라며 "기득권이 사라지므로 한글을 2류 문자로 취급한 걸로 추론할 수 있다"고 밝혔다. 지난 9월 26일 저녁 서울 광화문 세종대왕 인근 전통찻집에서 훈민정음 연구가 김슬옹 박사를 만나 구술 대담을 했다. 김 박사는 2016년 3월부터 2017년 10월 현재까지 훈민정음 해례본 특강을 한글문화연대에서 8주 과정으로 진행 중이다. 다음은 일문일답.
- '<훈민정음> 해례본'의 핵심 가치는 무엇인가요? "인류 최고의 문자 해설서답게 당대 최고의 철학, 수준 높은 언어학, 문자학을 아우르고 있습니다. 더욱이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쉽게 지식과 정보를 나누라는 뜻을 담았습니다. 해례본은 모두 66쪽으로, 이 가운데 8쪽까지는 세종대왕이 직접 저술한 '정음편'입니다. 이 정음편의 서문에 '유통(流通)'이란 말이 나오는데, 15세기 말(우리말)과 글(한문)이 유통이 안 되니 한문을 아는 이와 모르는 이가 유통(소통)하지 못하고 그래서 모두 유통할 수 있는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 왜 해례본 교육에 몰입하고 계신지요? - '<훈민정음> 해례본'에서 배워할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인지요? "훈민정음에는 누구나 평등하게 배울 수 있는 '문자 민주주의' 담겨"
- <훈민정음> 해례본은 왜 중요한가요? "해례본이 중요한 이유를 두 가지로 짚어보겠습니다. 첫째로는 한글 창제 원리가 정확히 기술된 것은 이 책밖에 없습니다. 18세기, 19세기 훈민정음을 연구했거나 언급한 학자들이 꽤 있지만 이들 모두 이 책을 보았다는 증거가 없습니다. 책을 좋아하고 책 수집광이었던 이덕무(1741~1793)조차 이렇게 써 놓았을 정도입니다(관련 자료를 갖고 나와 보여 주며). '훈민정음에 초성(初聲)·종성(終聲)이 통용되는 8자는 다 고전(古篆)의 형상이다. ㄱ 옛글자의 급(及)자에서 나온 것인데, 물건들이 서로 어울림을 형상한 것이다. ㆍㄴ 익(匿)자에서 나온 것인데, 은(隱)과 같이 읽는다. (가운데 줄임) 세속에 전하기를 '장헌대왕이 일찍이 변소에서 문살을 배열(排列)하다가 문득 깨닫고 성삼문 등에게 명하여 창제하였다'한다.<이덕무, <청장관전서> 54권 양엽기 1, 현대어번역(고전번역원)> 임금은 변소에 가지 않고 변기틀인 '매화틀'을 침소에서 이용했음에도 이런 잘못된 제자 원리가 어지럽게 유포된 것은 해례본을 보지 않고 썼기 때문입니다. 이런 오해가 완전히 풀리게 된 사건이 1940년에 <훈민정음> 원본 발견입니다. 왜냐하면 이 책의 해례 부분, 특히 '제자해'에 창제 원리가 자세하게 설명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그 다음에 무엇을 들 수 있을까요? - '<훈민정음> 해례본'의 인류 보편주의를 설명해 주세요. - 해외 학자들도 한글을 높게 평가하는데…. -'<훈민정음> 해례본'의 융합적 가치는 무엇인지요? - 해례본에 가치를 매긴다면 얼마나 될까요?
- 보험사에서는 어떻게 평가하나요? "전시를 위해서는 보험에 들어야 하는데 보험사에서 추정한 돈은 최소 1조 원이었습니다. 국제 고가품 사례에 비추어 그렇게 추산한 것인데 세계기록유산인데다가 종이 책으로서의 가치, 인류 최고 문자로서의 가치 등이 고려되었습니다. 간송 전형필 선생이 1940년에 매입한 가격은 정확한 기록도 없고 증언도 남기지 않았지만, 그 당시 일본돈 만 원, 중개료까지 합치면 만천 원으로 서울 최고 비싼 기와집 열 채 값이었다고 합니다." - 한글은 왜 '과학적인 문자'라고 불리나요? -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세요. 한글날이 '10월 9일'인 이유
- 곧 있으면 10월 9일 한글날입니다. 한글날은 왜 '10월 9일'인가요? "세종은 임금이 된 지 25년째인 47살 때, 1443년 12월(음력)에 훈민정음 창제를 알리고 50살 때인 1446년 9월 상한(음력)에 반포했습니다. 이로부터 4년간 <훈민정음> 보급에 주력한 뒤 1450년에 운명하셨습니다. 그럼 1446년에 실제 훈민정음 반포식을 했을까요? 1446년에 반포했다는 것은 반포식을 열었다는 의미가 아니라 '훈민정음'이란 새 문자를 해설한 책 <訓民正音>을 간행, 출판했다는 의미입니다. 여기서 상한은 1일부터 10일 사이이므로 정확한 날짜는 모릅니다. 상한의 마지막 날인 음력 9월 10일을 양력으로 환산한 날이 오늘날 한글날인 10월 9일입니다. - 기적의 문자 해설서 <훈민정음> 해례본 간행 571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훈민정음 해례본에 얽힌 몇 가지 궁금증을 질문 드리겠습니다. 우선 <훈민정음> 해례본은 왜 '해례본'이라 부르나요? - 해례본은 왜 '간송본'이라 부르고 또 '상주본'은 무엇인가요? - 간송본의 앞 두 장 네 쪽이 가짜라고 하는 것은 왜 그렇습니까? 지금 있는 것은 어떻게 보사한 것인지요? - 간송본은 세상에 어떻게 알려지게 되었나요?
- <훈민정음> 언해본은 무엇인가요? "<훈민정음> 언해본은 <훈민정음> 해례본 가운데 세종대왕이 직접 쓴 서문과 예의 부분을 한글로 번역하여 간행한 것입니다. 현재 남아 있는 가장 오래된 자료로는 세조가 펴낸 것으로 정확한 제목은 <세종어제훈민정음(世宗御製訓民正音)>입니다. - 언해본을 국어사학회에서 복원했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덧붙이는 글 | 서양 고전만 읽지 말고 우리 고전인 '훈민정음 해례본'도 읽어보고, 이것을 연구하는 학자들이 많이 나타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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