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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워맞춘 억지 독서, '즐거운 독서' 못 이겨요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16-10-04 | hit : 1006

대입 독서활동 관리
종합전형에서 ‘독서활동’ 강조
뭘, 어떻게 읽나 고민 많아져

무턱대고 어려운 전공책 금물
관심가는 쉬운 책 첫 단추로 삼아
‘배우고 느낀 점’ 방점찍는 독서 해봐
잘 쌓은 기록, 면접·자소서에도 활용


최근 입시에서 떠오르고 있는 열쇳말 가운데 하나가 ‘독서활동’이다. 서울대를 중심으로 주요 대학 학생부 종합전형(이하 종합전형)에서 독서를 강조하면서 책읽기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학생들은 내신과 동아리 활동만으로도 부족한 시간을 쪼개 책까지 읽어야 하는 상황. 시간도 없고 할 것은 많으니 사교육 시장을 찾아 효율적으로 독서활동 관리를 하기로 마음먹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독서 포트폴리오 등을 컨설팅해주는 곳들이 많아졌다.


한 교내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책을 찾아보고 있다. 대입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독서가 강조됨에 따라 독서를 통한 진로탐색, 과제연구 및 동아리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정아 기자

한 교내 도서관에서 학생들이 책을 찾아보고 있다. 대입 학생부 종합전형으로 독서가 강조됨에 따라 독서를 통한 진로탐색, 과제연구 및 동아리 활동이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이정아 기자

그러나 전문가들은 입시를 목표로 타인이 설계해준 인위적인 독서활동은 더는 대입에서 매력이 없다고 말한다. 입학사정관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진정성 있는 스토리는 학생의 진심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관심 분야를 찾고 역량도 키울 수 있는 ‘영혼 있는’ 독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 독서도 시행착오 과정 필요


이화여대 평생교육원 송민호 교수는 “<성공하는 7가지 습관> 저자 서문에 보면 ‘성공하고 싶은 마음까지는 이 책으로 전달할 수 없다. 성공하고 싶은 마음은 당신이 갖고 오라’는 구절이 있다”며 “독서도 마찬가지로 스스로 찾고 발견하는 재미를 붙여야 한다”고 했다.


올해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에 입학한 이준협씨도 처음부터 ‘내가 뭘 해야겠다’ 정해놓고 책을 읽은 사례는 아니다. 처음에는 학교도서관에 가서 추천도서목록을 다 빌려봤다. 이씨는 “접근하기 쉬운 문학 위주로 먼저 읽었는데 사실 빌려놓고도 재미없어 안 읽은 책도 있었다. 직접 훑어봐야 알 것 같아 우선 많이 빌려 봤다”고 했다. 여러 권 책을 훑어보던 중 가장 흥미가 갔던 게 ‘경제학’, ‘인류학’ 분야 책들이었다.


전문가들은 이씨 사례처럼 10권의 책을 읽었다면 읽다 만 책이 50권이 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독서에서 ‘실패 경험’이 쌓이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일이다. 교과 관련 분야이건, 인문 고전이건 다양한 분야 독서를 통해 자신의 관심사를 좁히고, 진로와 사회에 대해 고민한 흔적이 나타나는 게 핵심이다.


서울 중동고 안광복 교사는 “올해 대학 입시설명회에서 대학들이 강조한 게 ‘학교생활 충실도’였다”며 “수업시간에 책 한 권을 보더라도 충실하게 자기 생각을 갖고 읽으라는 것인데, 책을 통해 꾸준히 성장하는 문제의식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기계적으로 1학년 ‘교양독서’, 2학년 ‘전공탐색’, 3학년 ‘전공심화’ 식으로 ‘전공적합성’에 억지로 끼워 맞춘 독서를 할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여기서 문제의식은 사회문제에 대한 고민을 뜻한다고도 볼 수 있다.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1학년 박재경씨는 “역사책, 뉴스 등을 통해서 우리나라가 지정학적 이유로 주변국에 의해 휘둘리는 게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하면 국제외교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찾을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찾고 싶어 영토분쟁이나 국제법 관련 책을 찾아보게 됐다”고 했다.


단순한 사회문제뿐 아니라 타인에 대한 배려와 공동체에 대한 문제의식으로까지 확대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노령화’, ‘저출산’이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이를 해결하기 위해 내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보는 독서를 하는 것이다.


■ 독서력 낮다면 쉬운 책부터 접근


책과 친하지 않은 학생들은 여전히 막막하다. 이런 경우 ‘교과’에서 출발하는 것도 방법이다. 평소 힘들어하는 과목이나 이해가 잘 안 가는 특정 단원이 있다면 학교 교과담당 교사를 통해 책을 추천받는 것도 방법이다. 학생부 독서활동에 담임교사는 1000자, 교과담당 교사는 교과별로 500자까지 입력이 가능하다. 합격생들은 “추천받은 책의 독후감을 담당 교사에게 전달하면, 교사가 학생의 수준을 파악하고 있어 학생부 입력 하는 게 수월하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독서력이 낮은 학생들이라면 접근이 쉬운 문학, 만화, 이야기, 스토리부터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안 교사는 “<마왕퇴의 귀부인>이란 한나라 무덤 발굴을 다룬 고고학 책이 있는데, 여기 나오는 부인이 ‘유비’와 관련이 있다. 만화 <삼국지>라도 읽었다면 배경지식이 생겨 평소 관심 없던 이야기도 다르게 보인다”고 했다. 이런 식으로 무기에 대한 호기심이 물리학에 대한 관심으로 발전하는 학생도 많다.


독서에선 ‘내용 이해’가 기본이지만, 더 중요한 건 이를 통해 ‘무엇을 배우고 느꼈냐, 어떻게 심화시키느냐’다. 한겨레교육 김수연 논술강사는 “책을 읽을 때 내가 알고 있던 것과 같은 점·다른 점은 뭔지, 새롭게 획득한 관점이 있는지, 기존에 배운 것과 연결할 수는 없는지를 고민하면 자신만의 관점과 독서 경험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조언했다.


책에서 얻은 궁금증을 바탕으로 뭔가 더 파고들고 싶을 때는 각주나 해설, 책에 실린 참고 문헌을 살펴보고 따라가면 좋다. 고교 수준 책일수록 단편적인 사실만 설명하고 설명은 복잡한 각주나 해설에 달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합격생들은 “논문검색 사이트나 국회도서관 누리집에서 검색해 연관검색으로 나오는 도서 리스트도 유용했다”고 전했다.


■ 저자와 토론하듯 내용 적는 것도 방법


입시에서는 독서활동만큼 이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도 중요하다. 저자와 논쟁하듯이 책을 읽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송 교수는 “저자와 토론하듯 책을 읽는 것은 곧 ‘면접’으로 이어지는 독서방법”이라고 했다. 토론식 면접에서 중요한 건 수험생의 찬반이 아니라 예상되는 반론에 대한 재반론이 가능한가가 핵심이다.


서류에 정리할 때도 ‘A 주장과 B 주장이 있는데 궁금해서 책을 읽어봤다. B라는 내용이 있었는데 내 생각에 B 주장에선 이 부분이 약한 것 같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C 내용을 담은 책을 찾아봤다’ 식으로 정리하면 평가자가 대화하듯이 읽혀 가독성이 높아진다. 이는 독서활동 수준이 단순 내용 이해를 넘어 지식을 확대하고 검증하는 단계까지 나아갔음을 드러내주는 장치이기도 하다. 단, 면접관의 질문에 막힘없이 답할 수 있도록 본인이 읽고 충분히 소화한 책을 선택해야 한다.


교내 독후감대회나 과제연구 참가도 자신의 독서활동을 증명하는 방법이다. 이씨는 “독서를 통해 발견한 경제학에 대한 관심이 독후감대회나 과제연구로 이어질 때 더 신이 났다”며 “피케티가 <레미제라블>로 프랑스 경제를 분석한 것을 차용해, <고양이 대학살> 속 민중의 삶을 경제학의 시점에서 하부구조의 문제로 연구했다”고 밝혔다.


독서 포트폴리오를 정리해두면 수시 때 활용하기 편하다. 박씨는 “중학교 때부터 표지에 인문, 사회, 예술, 과학 4개 분야로 나눠 체크하고, 책 제목과 느낀 점을 짧게 독서록에 정리했다”고 했다. <리바이어던>을 읽고 당시 사상과 지금 사상의 맞는 부분과 전혀 맞지 않는 부분을 정리하고, 말미에는 비판점을 적어놓는 식이다. 이런 개인 독서록은 자기소개서를 쓸 때나 면접 전에 정리한 내용을 살펴보며 필요한 내용을 뽑아낼 때 유용하다.


이은애 <함께하는 교육> 기자 ⓒ 한겨레신문사 2016.1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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