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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아의 신' 오은영이 말하는 욱하는 부모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16-09-12 | hit : 1721

오늘 무시무시한 이야기를 들었다. 엄마가 아이에게 짜증이나 화를 내면 그 감정이 아이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가 사춘기 때 그대로 표출된다는 것이다. 어제도 우유컵을 들고 돌아다니는 아이에게 ‘욱’ 했는데, 어떡하지?

아이가 넘어지면 소리부터 지른다. “엄마가 뛰지 말라고 그랬지? 넌 도대체 왜 그러니? 벌써 몇 번째야?”라고 버럭 성질을 부린 뒤, 나중에 “괜찮아?”라고 묻는다. 아이가 다치면 화를 낼 것이 아니라 걱정되고 가슴 아파야 하는데 화부터 내게 된다. 그러다 보니 아이는 아파도 엄마한테 꾸중을 들을까 봐 괜찮은 척하고, 잘못한 일이 있을 때면 엄마 눈치부터 살핀다. 좋아하는 생선 반찬도 아이들 먹이느라 젓가락을 대는 시늉만 하고, 내 옷은 사지 않아도 아이에게 필요한 책이며 옷을 살 때 마음이 뿌듯한 걸로 봐서 분명 모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정작 아이에게 위로가 필요한 그 순간, 왜 따뜻한 말 한마디가 아닌 타박부터 나오는 걸까.


욱하는 엄마가 못 참는 아이를 만든다
아이 키우며 혼란을 겪는 엄마들 사이에서 ‘육아의 신’으로 불리는 오은영 박사는 이런 상황에 대해 엄마 자신이 느끼고 있는 섬세한 감정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세부적으로 보면 많은 사람들, 특히 욱하거나 화를 잘 내는 사람은 다양한 부정적 감정에 대한 세밀하고 섬세한 차이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가령 불안하거나 몸이 불편하거나 고통스럽거나 걱정되거나 마음이 아픈 등 각각의 감정을 세분화하지 못하고, 한보자기에 담아놓았다가 갑자기 왁 풀어내는 거죠.”

이런 반응이 단지 성숙하지 못한 혹은 성격이 나쁜 몇몇 엄마에게만 해당되는 일은 아니다. 유치원 엄마들 모임에서나 친구들을 만날 때면 다들 “나 정신과에 가봐야 할까 봐‟라며 지난밤 아이를 ‘잡은’ 이야기를 꺼내놓기 일쑤다. 더할 나위 없이 우아하고 차분한 엄마도, 웬만한 일에는 끄떡없는 엄마도 별반 다르지 않다. 엄마라는 이름 아래 우리는 모두 욱하고 이내 후회하는 생활을 반복하고 있다.

오은영 박사 역시 “저를 찾는 사람의 80%가 못 참고 욱하는 일로 고민한다”며 “10년 넘게 방송하고 있는 SBS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에서도 다양한 주제로 아이들과 부모 문제를 다루지만 기본은 대부분 부모나 아이가 참지 못하고 욱하는 데 문제가 있다”고 강조한다. 그녀는 최근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라는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는 다양한 상황에 맞닥뜨립니다. 화가 날 때도 있고, 낯설거나 민망하거나 슬프거나 애잔한 등 다양한 상황과 원인, 감정을 느끼지요. 그런데 우리는 그것을 ‘욱’으로 표현합니다. 문제는 부모가 이렇게 단순하게 감정 표현을 하면 아이 역시 다양한 감정을 세분화하지 못합니다. 늘 단순하고, 강도가 센 감정 표현을 학습하다 보니 감정 조절을 제대로 배우지 못하고, 감정 발달을 그르치면서 아이 역시 욱하게 되는 거죠.” 무엇보다 ‘욱’하는 습관은 부모와 아이 관계를 망친다. 간혹 벌컥 화를 내는 부모 중에서는 “내가 좀 다혈질이야”라거나 “나는 뒤끝은 없어”라는 말로 욱하는 행동을 심각하지 않게 여기는 이도 있다. 하지만 이런 태도는 자신의 입장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고, 자신의 감정만 중요시하는 것으로 상대 감정에 대한 배려심이 빠져 있다. 자연히 ‘욱’하는 대상인 ‘아이’와 관계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

“기질에 따라 다르기는 하나 이런 환경에서 아이는 점점 사나워집니다. 자신의 감정을 지키기 위해 부모와 대적하려고 하기도 하고요. 어릴 때는 별 문제 없다가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돌변하기도 하죠. 불필요하게 욱하는 일은 관계에 아주 파괴적입니다.” 아이 역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으로 ‘욱하는 것’을 답습하게 된다. 살다 보면 여러 사람과 부딪치게 되는데 욱하는 것으로 상황과 대화를 이끄는 것을 보고 자란 아이는 다른 사람과 갈등이 생길 때마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욱’하는 태도를 보이게 된다. 자연히 다른 이들에 대한 배려심이나 공감 능력을 키우지 못한다.

욱하는 포인트를 파악한다
문제는 욱하는 것이, 버럭하고 성질을 부리는 일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잘 조절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이가 잠든 밤마다 후회를 해도 다음 날 아침이면 유치원 버스가 올 시간이 다 됐는데 밍기적거리는 아이의 모습에, 두 살짜리 동생과 장난감을 가지고 다투는 통에 “너 정말 혼나볼래?”라고 소리부터 지르게 되는 것. “사실 쉽지 않습니다. 화를 참는 건 어려운 일이에요. 특히 아이들처럼 약자에게 화를 내지 않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그래도 노력해야 합니다. 쉽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해요. 원래부터 욱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애쓰고, 노력하면 변할 수 있어요. 많이 노력하면 어느 정도, 표준화된 정도까지 다가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욱하는 감정은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오은영 박사는 우선 자신이 욱하는 지점을 찾아야 한다고 조언한다. “욱하는 지점을 찾으려면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일단 자기 자신을 파악하는 일이에요. 자기 자신을 찾을 때는 또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바로 인생에서 내게 중요한 기준인 가치관과 가장 취약한 부분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죠. 아이든 타인이든 바로 이 부분을 건드릴 때 감정이 힘들어지거든요. 문제는 아이들이 바로 이런 엄마의 취약하고 미성숙하고 나쁜 점을 잘 건드린다는 거예요.”

자신이 어떤 부분에서 예민하고, 불안하고 감정 조절이 어려운지를 깨달은 후 ‘그래, 내가 이런 부분이 있지’라고 인정하거나 ‘괜찮아’라고 다독이거나 ‘내가 왜 이렇게 예민하지?’라는 식으로 마음을 파악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감정을 처리해보자.

“사람은 모두 조금씩 다릅니다. 좋든 싫든 어떤 감정이 형성되고, 그 감정이 정점을 찍고 얼음 녹듯이 해결되는 과정은 사람마다 다르고, 속도도 다르죠. 하지만 정서적으로 잘 발달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순간순간 자신의 감정을 잘 포착합니다. ‘어, 내가 지금 몸이 피곤하네. 짜증이 나네. 아이 걱정을 하고 있네, 불필요하게 화내고 있네’ 식으로 자신에게 일어나는 감정의 정체를 잘 아는 거죠. 그다음에 그 감정을 잘 처리하고, 나아가서 다른 사람의 감정을 잘 이해합니다.”


아이가 자신의 단점을 닮았을 때
엄마들이 종종 얘기하는 것 중 하나가 자신의 단점이 아이에게 나타날 때 바로 욱한다는 것이다. 아이가 말썽을 부리거나 문제를 일으키면 딱 그만큼만 바라봐야 하는데 ‘혹시 나처럼 되면 어떡하지?’ ‘저러다가 나중에 더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을까’라며 자신의 인생 무게를 드리우고, 군더더기를 더해 걱정을 한다.

“엄마가 살아온 인생에서 실수 혹은 아픔에 대한 걱정을 아이에게 전가시키는 거예요. 해결되지 않은 자기의 모습을 아이에게 덧입히는 거죠. 아이 행동에 욱하기보다 먼저 아이에게 솔직하게 얘기하세요. 아이가 인사하지 않아 욱한다면, 유난히 부끄러움을 타서 ‘버럭’한다면 ‘엄마도 어릴 때 얼굴이 달아오르고 쑥스러웠어. 너는 어때? 너도 쑥스러워서 어렵니?’라는 식으로 다가가보는 거예요. 그리고 ‘나는 이렇게 해봤더니 도움이 되더라’라고 끊임없이 이야기해보세요.”

이런 마음이나 노력 없이 아이에게 자신의 단점이 보이지 않길 바라고, 걱정만 하고, 아이가 보기 싫은 행동을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화내거나 외면하는 건 부모로서 의무를 저 버리는 행동이다. 욱하는 지점을 찾기 위한 또 하나의 과정은 부모와의 관계를 돌아보는 시간이다. 나라는 인격이 형성되는 데 있어서 부모와의 관계를 간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중요한 사건이거나 좋았던 기억, 속상하거나 기분 나빴던 일들을 떠올리고, 욱하게 만든 사건과 관련된 기억들을 심오하게 돌아보자. 과거 일에 대해 부모의 잘못을 떠올리라는 것이 아니다. 다만 자신이 부모에게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깨닫고, 그 영향이 나와 배우자, 또 나와 아이들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다.


욱하는 순간을 위한 행동 강령을 정해 실행한다
욱하는 일을 줄이기 위해서는 욱하는 상황의 공통점을 살피는 일도 필요하다. 아이에게 욱할 때 공통된 원인과 상황이 어떤 것인지 살펴보는 것이다. 배고플 때 아이에게 욱한다면 틈틈이 먹을 수 있는 간식을 준비하고, 아이에게 공부를 가르칠 때 욱한다면 되도록 직접 가르치지 말고 남편이 지도하도록 하는 식으로 욱하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도록 미리 조절하자.

다음으로 욱하는 상황에서 보이는 공통된 행동들, 가령 소리를 지른다거나 물건을 던진다거나 문을 쾅 닫는 식의 행동을 적어본다. 이런 노력만으로도 나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욱하는 감정을 줄일 수 있다. “스스로 화내는 순간, 내가 어떻게 해주면 멈출 수 있을까, 현장에 적용할 수 있는 구체적인 사항들도 기억하세요. 예를 들어 ‘멈춰, 그만’이라고 말하고, ‘화장실 갔다 올게’라고 말한 뒤, 그걸 실생활에 적용해보세요. 그래야 아이도 엄마가 노력한다는 걸 알 수 있어요.”

물론 이런 노력이 하루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다. 다음 날이면 또 다시 욱하더라도 시도해보고, 다시 해야 한다. 많은 엄마들이 아이를 훈육할 때 어떤어떤 방법이 좋다는 방법과 개념은 알고 있다. 하지만 머리로는 알고 있어도 뇌에서 그 방법을 끄집어내 실생활에 적용하고, 그 순간에 실행하는 일은 쉽지 않다.

“좀 유치해 보일 수도 있는데요, ‘나는 오늘 하루도 화를 내지 않는다’고 냉장고에 써 붙여보세요. 그러면 욱하는 순간 뇌에서 참는 방법이 나오는 속도가 빨라집니다.” 아이 데이터를 모으는 것도 방법이다. 아이 앞에서 욱하지 않으려면 아이를 잘 살펴 객관적인 정보를 모으고 파악하고 인정하고 해결법을 찾아야 한다. 예컨대 아이가 마트에 가서 장난감을 사달라고 시도 때도 없이 떼를 쓴다면 부부 중 한 명만 장을 보러 가거나 아이가 배고플 때 잘 못 참는다면 손쉽게 먹을 수 있는 간식을 준비해두는 등 아이의 문제 행동을 파악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엄마들은 “내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고 말한다. 내 아이다 보니 객관적으로 보기 어렵고, 아이들이 다 그런 건지, 내 아이가 유난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것. “아이들은 언제든지 신호를 보냅니다. 그걸 살펴야 합니다. 24시간 내내 아이를 볼 수는 없죠. 아이를 감시하라는 말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고 보라는 말입니다. 보면 보입니다. 아이가 유치원 혹은 어린이집에서 돌아온 후 아이 눈동자 안에 내 모습이 있어야 합니다. 아이 얼굴을 들여다보고 얘기해야 합니다. 그렇게 5분이건, 10분이건 아이의 눈 안에 내가 있는 걸 확인하면 충분합니다. 그 짧은 시간이 누적되면, 평소 얼굴 표정과 달라진 것을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아이들을 가르치느라, 학원 뺑뺑이를 돌리느라,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하고, 한 공간에 있다고 해도 대화를 나누기 보다는 해야 할 일을 지시하는 데만 시간을 소모한다.

아이와 소통은 특별한 방법이나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일정 시간, 서로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안을 찾아 꾸준히 하는 것이 좋다. 단, 욱하지 말라고 해서 아이에게 질질 끌려다니라는 말은 아니다. 숙제는 아이 책임으로 해야 하는 일이고, 친구를 때리면 안 된다는 등 안 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을 자신 있게 얘기해야 하고, 가르칠 것은 단호하게 가르쳐야 한다. “단호함은 내용을 분명하게 얘기하라는 말입니다. 아이에게 사정하거나 지나치게 부드럽게 설득하지 마세요. 화내는 것도 금물입니다. 아이는 절대로 ‘재빨리, 예쁘게’ 엄마 말을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꼭 할 것에 대한 큰 지침만 주면 충분해요.”

극도로 분노하지 않기 위해서는 나와 나의 관계가 기본이다. 사회에서 여러 사람과 부대끼며 살아가다 보면 타인이 나를 건드리거나 화나게 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있다. 하지만 이때마다 ‘욱’하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거나 다른 사람 때문이라고 탓하는 것은 미성숙한 태도다. 오은영 박사는 평소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정체를 잘 파악하고, 잘 조절하고, 잘 표현해서 상대의 감정에 공감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아이에게 욱하더라도 반드시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합니다. 엄마라도, 아빠라도, 또 누군가 권력을 가진 이라도 누가 누구를 때릴 수는 없고, 스스로 해결하지 못한 감정을 타인에게 쏟아부을 권리는 없기 때문이죠. 자신에게 일어나는 감정을 소화하는 일은 내 몫이라는 사실을 잊지 마세요.”

ⓒ 이경선(자유기고가) 사진 김나윤 맘앤앙팡 2016.08.24. 참고도서 :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장소협조 : 221B in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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