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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무슨 책 읽어?'가 안부 인사가 되는 세상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16-06-05 | hit : 1017
빡빡한 기자 생활을 청산했지만 일상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하루는 오전 6시를 전후해 시작된다.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뉴스 확인이다. 텔레비전 뉴스를 틀어놓고 외신과 국내 주요 일간지를 일별한다. 식사를 하면서 이메일을 확인하고 오후에는 사람을 만난다. 책상과 침대 위에는 동시다발적으로 읽다 만 책 예닐곱 권이 미로를 만들곤 했다.
전병근씨는 그 미로 속을 비집고 들어가 길을 찾고 손을 내미는 사람이다. 지난 2월 카카오와 함께 큐레이팅 서비스 ‘북클럽 오리진’을 론칭했다.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라는 말이 안부 인사가 되는 세상을 꿈꾸면서. 그는 책이 세상과 타인을 이해하고 무엇보다 영원한 수수께끼인 자신을 알아가는 최상의 매개라고 믿는다. 매일 아침 9시, 북클럽 오리진의 ‘친구’ 1만800여 명은 그가 보내는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는다. 언제나 '좋은 아침입니다'로 시작하는 메시지에는 책 관련 콘텐츠가 담겨 있다.
그는 애초 종이 위 활자를 만드는 일로 뼈가 굵은 사람이었다. <조선일보>에서 일하면서 사회부·국제부·문화부를 거쳐 중남미 특파원을 지냈다. ‘제2의 인생’을 고민하던 2009년, 미국 연수를 통해 뉴미디어의 가능성을 봤다. <조선비즈>로 자리를 옮긴 뒤 실험을 시작했다. ‘온라인에서는 긴 글을 읽지 않는다’는 고정관념은 그때나 지금이나 지배적이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원고지 100장에 육박하는 긴 인터뷰를 연재했다. ‘미니북’이라는 꼭지명처럼 소책자에 가까운 분량의 글이었다. 대개가 무모하다고 생각했지만, 예상외로 반응이 좋았다. 그중 따로 추려 다듬은 9인의 인터뷰는 <궁극의 인문학>(2015, 메디치)이라는 단행본으로 나왔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 카카오에서 콘텐츠 제휴 제안이 왔을 때 아예 퇴사와 독립을 결정했다. 카카오 담당자도 놀랄 정도의 결단이었다. '모바일을 기반으로 본격적인 실험을 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식 큐레이팅에 대한 수요는 분명히 있고, 어디선가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다.'
ⓒ전병근 제공 : 전병근 북클럽 오리진 대표(위)가 지난 3월 <인간의 품격>을 쓴 데이비드 브룩스를 인터뷰했다. 사진은 당시 <워싱턴 포스트> 사옥에서 찍은 것.
‘지식 큐레이터’라는 새로운 직함도 만들었다. 북 큐레이터라는 말이 어쩐지 식상해서 붙여본 그 이름을 전씨는 매 순간 곱씹는다고 말했다. '직함에 값하는 일을 하고 있나, 마치 제 발로 교실 뒤로 나가 무릎 꿇고 걸상 들고 벌서는 느낌이다. 일이 사람을 만들고 성장시키기도 한다. 덕분에 신문사를 그만둔 후에도 하루하루 밀도 있게 살고 있다.'
온라인을 넘어 오프라인으로 떠나는 ‘책 원정대’
사실상 1인 미디어로 운영되다 보니 개인의 취향이나 선호를 피할 수는 없겠지만, 북클럽 오리진에서 소개하는 콘텐츠는 보편성을 지향하려 노력한다. 그는 '자신을 상대화하고 내 안목을 여러 차례 반문하는' 과정을 거쳐 콘텐츠를 선정한다고 말했다. ‘정민의 우리 선시 산책’ 같은 다른 필자의 연재물이나 ‘요즘 무슨 책 읽으세요’라는 릴레이 인터뷰를 통해 다양성을 확보했다.
자신의 이름을 브랜드로 내걸지 않은 이유는 북클럽 오리진이 ‘공공의 커뮤니티’가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온라인을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북토크 같은 오프라인 행사를 기획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5월21일 국립수목원(광릉수목원)에서 진행된 3차 북토크 주제는 ‘숲에서 배우다’였다. <다시, 나무를 보다> (2014, RHK)와 <나무수업>(2016, 이마)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 후 함께 숲길을 걸었다. 신준환 전 국립수목원장이 숲 해설을 곁들였다. 북토크 참가자들의 반응은 뜨겁다. 별도의 참가비가 있고 주말인데도 신청자가 많아 추첨이 불가피할 정도다. 이날도 40여 명이 경기도 포천까지 자발적으로 ‘책 원정’을 나섰다.
현재는 무료로 콘텐츠를 제공하고 있지만, 유료회원제를 기반으로 한 책 배송 서비스도 준비 중이다. 유료 회원이 되면 매달 북클럽 오리진이 선정한 책 네 권 중 한 권을 받아볼 수 있게 하는 식이다. 한정판 책을 받아본다거나 오프라인 모임에서 우선권을 가질 수도 있다. 전씨는 요즘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최대의 혜택'이 무엇일지 구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