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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가 인문학을 만나더니, 아이들도 달라졌어요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15-10-01 | hit : 2628
ㆍ서울시교육청 ‘아빠 인문학’ 강좌…부모 삶·여유 찾아주기 기획 호응
ㆍ“아침마다 윽박질러 아이 깨우다 어깨 마사지를 해주니 짜증 안 내…내 생각부터 바꾸니 아이도 변해”



“남자들이 다른 사람 아픈 것도 모르고 마음이 돌처럼 굳었어요. 여자는 해야 할 것을 하고 남자는 하고 싶은 것을 한다고 하죠. 그래서 명절 때 문제가 생기는 거예요. 여기 계신 분은 안 그러죠?”




지난 24일 경희대 청운관에 모인 100여명의 아빠들은 김민웅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가 이렇게 말하자 웃음을 터뜨렸다. 추석 연휴를 앞둬서인지 평소 170여명이던 수강생이 줄었지만, 강의 열기는 숫자와 상관없었다. 김 교수가 통기타를 메고 ‘뭉게구름’을 부르자 몇몇 아빠들이 따라 불렀다. “이 땅이 끝나는 곳에서/ 뭉게구름이 되어/ 저 푸른 하늘 벗 삼아/ 훨훨 날아다니리라.”






지난 24일 서울 경희대에서 열린 서울시교육청의 ‘아빠 인문학 아카데미’에서 아버지들이 김민웅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의 강연을 듣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올해 처음 ‘아빠 인문학 아카데미’ 강좌를 열었다. 지난해부터 시작한 ‘엄마 인문학 아카데미’가 성공하자 아빠들에게도 삶의 여유와 자긍심을 되찾아주자는 뜻으로 확대했다. 강좌는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가 기획했다. 지난 10일부터 이문재 교수가 ‘도시에서 신나게 늙어가기’, 유정완 교수가 ‘밤과 인생과 문학’에 대해 강연했고 10월1일에는 이병태 교수가 ‘수치(羞恥) 넘어서기’를 주제로 강연할 예정이다.




이날 김 교수는 ‘기억, 생각 그리고 나의 탄생 2막’이라는 제목으로 동화 속 이야기를 다시 읽는 방법을 강의했다.




“<헨젤과 그레텔>에서 마녀를 퇴치하고 돌아오는 길에 헨젤과 그레텔은 강을 만나요. 강에는 오리가 한 마리 있죠. 그레텔이 노래를 부르자 오리가 그레텔 앞으로 옵니다. 헨젤이 먼저 타고 동생에게 타라고 해요. 그레텔은 타지 않습니다. ‘우리 둘이 타면 오리가 힘들어’라는 거죠. 헨젤에게 오리는 수단이지만 그레텔에게는 마음을 주고받는 주체적 존재죠. 동화 속에서 우리는 이런 마음으로 세상을 대하는 것을 보게 돼요.”




김 교수는 “동화 속 이야기의 과정을 잊어버릴 만큼 우리 교육에는 과정이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니까 내 아이가 어떤 과정에서 고통을 겪었을까 생각하지 못한 채 어느 날 갑자기 결과만 묻게 되는 거예요.” 그는 “교육은 인생을 나누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교육이 없으니까 아이들은 결과 위주로 자기 인생을 해석하고 바라보게 됩니다. 실패했다고 해도 그 과정에서 지혜를 얻었다고 말해주는 부모가, 교사가 되어야겠죠.”




질의응답 시간이 되자 질문이 쏟아졌다. 한 아버지가 물었다. “대학에 다닐 때는 정치에도 분노하곤 했는데 이제 정치는 귀찮게 느껴집니다. 정의롭지 못한 힘에 무너져버리는 경험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김 교수는 “근본적 변화는 나에게서 출발한다. 정치를 바꾸는 것은 시민의 힘”이라며 “모임에서 한 달에 10만원씩 모은 돈을 회계 담당이 들고 튀었다면 난리가 난다. 수십조를 움직이는 정치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 모른다. 그레텔의 마음을 가진 사람이 정치를 하면 우리 사회에서 가장 힘든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하게 될 것”이라고 답했다.









한 아버지는 “강의를 잘 들었지만 당황스럽기도 하다”며 운을 뗐다. “자랄 때 남자는 울면 안되고 자기 감정을 드러내면 안된다고 교육받고 컸습니다. 동화 속 이야기를 다시 읽는 법을 말씀하셨지만 막막하게 느껴지고 내 안의 에너지가 떨어져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김 교수는 “막막함이 소중한 경험”이라고 강조했다. “막막해진 적이 없는데 막막해진 것이잖아요. 갑자기 낯선 길에 떨어졌으니 이제 물어봐야 하는 거죠.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골목이 익숙해지고 간판도 눈에 들어올 것입니다.”




강의가 끝나고 4명의 아빠들과 마주했다. 그동안 강의가 어땠을까.




이창헌씨(49)는 “우리는 스마트폰을 손에서 안 놓으면서 아이들한테는 놓으라고 하고 부모는 변하지 않으면서 아이들만 변하길 원하고 있다는 말이 와 닿았다”며 “스스로가 먼저 변해야 한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인문학을 다시 가까이하게 된 것이 좋다고 했다. 이씨는 “대학 졸업하고 사회에 진출했더니 회식 문화 때문에 술로 빠져드는 사회다. 오후 7시 강의 시간에도 맞춰오기 힘들다”며 “우리나라 날씨가 참 좋은데 아이들이 그걸 느낄 시간이 없다. 어떻게 하면 사회를 선순환으로 가는 길로 움직일 수 있을까 고민이 된다”고 말했다.




아빠들은 강의를 듣고 아이를 대하는 법이 달라졌다고 했다. 부모의 생각이 달라져야 교육의 방향도 달라질 수 있다는 공감이었다. 김학봉씨(49)는 “그동안 아침마다 윽박지르다시피 하면서 아이들을 깨웠고 나도 늦고 아이들도 늦었다”고 말했다. “생각을 바꾸고 난 뒤 일어나서 아이들 어깨 마사지를 해줘요. 짜증내던 시간이었는데 나도, 아이들도 얼굴빛이 달라졌습니다. 내 생각이 바뀌니까 아이들 반응이 달라지더라고요.”



김원석씨(42)도 “아이들과 소통하고 싶은데 방법을 잘 모르다가 세세하게 알아가게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정환씨(50)는 “개인들은 수만가지 보험상품을 들고 계속 불안해하며 살고 있는데 인문학을 배우면서 어린 시절 우리가 누렸던 공동체를 다시 한번 만들어보자는 의지가 생긴다”고 말했다.


ⓒ 경향신문 임아영기자 2015. 09.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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