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그림책 6종이 올해 52회를 맞은 이탈리아의 볼로냐아동도서전(3월 30~4월 2일)이 주관하는 제 50회 라가치상의 5개 전 부문에 입상하는 쾌거를 올렸다. 라가치상은 세계 최고 권위를 지닌 그림책 상으로, 한국 그림책이 전 부문에서 수상작을 내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 그림책은 단기간 빠르게 성장했지만 이를 둘러싼 국내외 환경은 갈수록 악화하고 있다. 한국 그림책 시장의 문제점과 대안을 모색해본다. [편집자 주]
[기사 게재 순서]
① 라가치상 휩쓸었지만…그림책은 '찬밥신세'
② 엄마들은 왜 그림책을 편식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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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대형서점의 유아,아동 베스트셀러 코너. 주로 학습서와 해외 유명 작가의 그림책이 꽂혀 있다
지난 6일 찾은 서울 시내 한 대형서점의 아동도서 코너. 아이건 어른이건 독자들은 베스트셀러가 진열된 서가를 둘러봤다. 서가에는 주로 학습서와 앤서니 브라운 등 해외 유명 작가의 그림책이 꽂혀 있었다.
2만 권의 장서를 보유한 국립어린이청소년도서관의 상황도 비슷했다. 국립어린청소년도서관 자료실의 한 사서는 "아이와 함께 방문하는 어른들은 라가치상, 뉴베리상, 칼데콧상 등 수상작을 주로 찾는다"며 "독자마다 선호하는 작가가 다르지만 국내 작가보다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진 외국 작가의 책을 고르는 빈도가 높다"고 전했다.
권정생이 쓰고 정승각이 그린 그림책 '강아지똥'(1996년 출간)은 117만부, 백희나의 '구름빵'(2004년 출간)은 50만부 이상 팔렸다. 그러나 스테디셀러가 된 국내 그림책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독자들은 여전히 해외 유명 작가의 그림책을 선호한다.
출판사와 독자의 선택이 어긋나는 현상에 대해 김장성 '이야기꽃' 출판사 대표는 "그림책 구매자와 독자가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장성 대표는 "독자의 연령층이 낮을수록 검증된 작품이 잘 팔린다"며 "그림책을 사는 사람은 어른(부모, 교사)이지만 읽는 사람은 어린이다. 어른 스스로 책에 대한 확신이 없기 때문에 유명 작가가 낸 책이나 수상작 위주로 선택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집집마다 경쟁하듯 들여놓는 전집은 국내 그림책이 고전하는 또다른 원인이다. 40대 주부 정수정('햇빛공방' 대표) 씨는 "아이가 어린이집 들어갈 때쯤 되면 전집이 장난감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 '전집 하나 정도는 갖춰야 한다'는 분위기에 휩쓸려 구입하는 엄마들도 많다"고 했다.
또다른 40대 주부 김소연('햇빛공방' 이사) 씨는 "단행본 그림책은 담고 있는 메시지와 그림체가 작가에 따라 천차만별이지만 전집은 50권이면 50권 모두 그림체가 비슷하다"며 "한 권을 읽더라도 좋은 책을 골라 엄마와 아이가 함께 음미하며 읽는 게 중요하지만 엄마와 아이가 모두 바쁘기 때문에 전집으로 타협점을 찾은 것일 수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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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독자가 서점에서 그림책을 읽고 있다. 사진=문수경 기자
가장 큰 문제는 그림책 비평문화의 부재다. 한 해에만 수많은 그림책이 쏟아지지만 이에 대한 서평이나 평론이 거의 없기 때문에 독자는 그림책을 고를 때 서점의 베스트셀러 목록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부모가 전집 마련에 '올인'하는 것도 비슷한 이유다.
국내에 그림책 작가를 배출하는 교육기관은 여럿이지만 그림책 평론가를 양성하는 곳은 전무한 실정이다. 김장성 대표는 "일러스트레이션 전공이 개설된 대학원이 4곳(홍익대, 국민대, 서울시립대, 상명대), 사설 교육기관이 3곳(한국일러스트레이션학교, Si그림책학교, 꼭두일러스트교육원) 정도 있지만 이 가운데 그림책의 역사와 이론 등을 두루 가르치는 곳은 없다"고 말했다.
김서정(KBBY 회장) 그림책 평론가는 "현재 활동하는 그림책 평론가는 문학적인 부분에 치중하는데 그림까지 아우를 수 있어야 한다"며 "그림책 대학원대학교를 만들어서 글과 그림을 폭넓은 시각으로 연구하는 그림책 평론가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측면에서 독자의 의견을 최대한 반영해 상을 주는 일본의 사례는 눈여겨 볼만하다. 대표적으로 독자 투표로 결정되는 일본그림책상의 독자상(전국학교도서관협의회,마이니치 신문사 주최) 과 각 지역서점의 아동도서 담당직원들이 선정하는 일본서점그림책대상이 있는데, 독자나 서점직원이 직접 고른 책인 만큼 수상작에 대한 독자의 반응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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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는 어른들이 그림책 '곰돌이 팬티' 속 곰돌이 캐릭터를 인형, 액자, 도시락 등으로 만든 후 인스타그램에 공유한다. 사진=인스타그램 제공
제18회 일본그림책상 독자상과 제2회 일본서점그림책대상을 받은 '곰돌이 팬티'를 번역 출간한 '북극곰' 출판사 이진아 씨는 "'곰돌이 팬티'는 도서전에서 가장 인기있는 도서다. 일본에서는 어른들이 곰돌이 캐릭터를 (종이)인형, 도시락, 쿠션, 액자 등으로 변형해서 인스타그램을 통해 공유할만큼 독자층이 넓다"고 말했다.
김서정 평론가는 "그림책은 어린이가 보는 매체라는 인식이 강하지만 사실은 작가의 예술관, 인생관이 녹아있는 하나의 예술 장르"라며 "(그림책이) 다층적이고 깊이있는 내용을 포괄한다는 점을 적극적으로 알려서 독자의 스펙트럼을 확장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 CBS 노컷뉴스 문수경 기자 2015. 3. 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