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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노하는 사람은 '진화가 덜 된 존재'라고? - 양창순, 이예나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15-03-31 | hit : 3496


감정의 이론가로 불리는 찰스 다윈은 자주, 심하게 분노하는 사람들을 가리켜 '진화가 덜 된 존재'라고 했다. 요즘 들어 그런 유형들이 많아지고 있다. 분노 발작을 참지 못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분노하는 사람은 '진화가 덜 된 존재'라고? - 양창순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정의파'?


강민아 씨(가명, 29세) 역시 그런 케이스로, 그녀는 자신을 정의파라고 여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기 때문이다. 한 마디로 그녀는 화가 나면 바로 화내고 마음에 안 들면 바로 따지는 스타일이다.

식당에서 자신보다 늦게 온 손님의 주문을 먼저 받는 직원이 있다고 치자. 민아씨는 곧장 그를 불러 큰소리로 항의한다. 버스가 늦게 오면 늦는다고 기사한테 화를 낸다.

한 번은 버스 안에서 뒷자리의 여중생들이 시끄럽게 떠든다고 야단을 쳤다가 된통 당한 적도 있다. 여중생들이 민아씨를 째려보며 입을 모아 "아, 짜증나! 열라 재수없어!"를 시작으로 그들 특유의 거친 언사를 마구 쏟아낸 것이다. 거기서 끝났으면 좋았겠지만 평소 정의파임을 자처해 온 민아씨로서는 그럴 수가 없었고 결국 말싸움이 커져서 소란이 일어나고 말았다.

그러자 참다 못한 운전기사 아저씨가 다음 정류장에서 "야, 너희들 다 내려! 내려서 싸우든지 말든지 해!" 하고 소리치는 사태가 일어났다. 나이 지긋한 아저씨의 호통에 엉겁결에 정류장에서 내린 사람은 민아씨 혼자였다. 뒷통수로 박수를 치며 깔깔거리는 여학생들의 웃음소리가 쏟아졌고. 결국 민아씨는 한참을 기다려 다음 번 버스를 타야 했는데, 그날 하루 종일 분을 참지 못해 친구들한테 죄다 전화를 걸어서 울분을 토해 냈다.

문제는 민아씨가 평소 지나치게 자주 친구들에게 그 비슷한 일로 전화를 한다는 사실이다. 오늘은 회사에서 대리 아무개가, 대리도 직함이라고 잘난 척해서 짜증나 죽을 뻔했다느니, 여자 선배 누구는 도무지 회사 생활하는 기본도 안되어 있으면서 자기한테 오히려 '지적질'이라느니, 지하철에서 어떤 매너 없는 인간들이 어찌나 큰소리로 떠들어대는지 물병이라도 들고 있었으면 '확' 끼얹어 주는 건데 그러지 못해 분하다느니 하는 식의 레퍼토리는 거의 고정적이었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참아 줄 만했다. 어쨌든 민아씨 말대로라면 상대방에게 조금씩이라도 허물이 있는 것은 분명하니까. 하지만 민아씨가 스스로의 기준에 비추어 볼 때 제대로 양심적이고 규칙을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은 자기 혼자뿐인 것처럼 떠들어댈 때는 친구들도 다 기가 질려 했다.









분노하는 사람은 '진화가 덜 된 존재'라고? - 양창순







자기 중심적 '공격성 지배성'


민아씨는 평소에 친구들과 어디를 함께 가다가도 갑자기 화를 낼 때가 많았다.

예를 들면 햇살이 좋으면 기미가 생긴다고 화를 내고, 비가 오면 신발이 젖는다고 화를 내는 식이었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친구들을 봐도 무조건 짜증을 냈다. 물론 뒤에서. "돈이 남아 도네. 팔자 좋네. 신랑 잘 만났네" 기타 등등. 들어주는 사람이 지칠 정도였다.

더 심한 것은 자기 기분이 우울할 때마다 주위 사람들 모두에게 "나 지금 너무 우울해 죽을 것 같으니까 위로해 달라"고 전화를 걸곤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친구들이 받아주지 않으면 이번에는 그런다고 화를 냈다.

주변 사람들이 하나 둘 연락을 끊기 시작했다. 그러자 민아씨는 남아 있는 친구들에게 연락을 끊은 친구들을 싸잡아 욕하는 걸로 화를 풀었다. 결국 남은 친구들도 포기하고 절교를 선언하자 민아씨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자신이 대체 뭘 잘못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어서였다. 그러면서 말했다.

"아니, 상대가 먼저 잘못하는데도 화가 나지 않나요? 그리고 화가 나면 화가 난다, 짜증나면 짜증난다, 우울하면 우울하다고 말하는 게 뭐가 이상하죠? 어떻게 불만이 있는데 속으로 삼킬 수가 있나요?"

민아씨의 경우 분노조절 장애를 겪고 있으면서 그것을 자신이 공정하고 양심적인 사람이어서 옳지 않은 일을 보면 분노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전형적 케이스에 속했다.

작은 일에 엄격하게 원칙을 들먹이면서 화내는 사람들 중에는 민아씨처럼 분노 조절 장애를 겪는 사람들이 많다. 그들의 인간관계 패턴을 보면 거의 대부분 공격적인 지배욕구를 갖고 있다. 심리분석을 해보면 '공격성 지배성'이 대단히 높은 경우가 많은 것이다.

한 마디로 자기 마음대로 상황을 좌지우지하고 통제하고 싶어하며, 그렇지 못할 경우 쉽게 화를 내고 공격적이 되며 피해의식도 키워가는 타입이다. 그러면서 스스로는 자신을 정의파라고 여기는 경우에는 최악의 조합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신념(?)이 확고한 만큼 행동 역시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강민아 씨가 그런 케이스였다.

민아씨는 상담이 진행되면서 "나는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나 같은 줄 알았다, 그러다 보니 어떻게 분노를 참고, 말을 돌려 하는지 나는 지금까지 배우지 못했다"라고 털어놓았다.

그녀는 현재 분노를 다스리고 완곡하고 부드러운 표현방법을 쓰고자 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자신의 인간관계 패턴이 공격적이고 지배욕구가 강하다는 것과 그로 인해 잦은 분노발작을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나서 좀 더 유연한 사람이 되고자 애쓰고 있는 것이다. 아마도 머지 않아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양창순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의학박사. 연세대 의과대학과 의과대학원 졸업. '주역과 정신의학'을 접목해 성균관대학원에서 두 번째 박사학위 받음. 오랫동안 대인관계 클리닉을 운영해 오고 있으며 현재 마인드앤컴퍼니 대표. 삼성경제연구소 SERICEO에서 100회 이상 '심리클리닉' 진행. '나는 까칠하게 살기로 했다' '당신 참 괜찮은 사람이야' '나는 외롭다고 아무나 만나지 않는다' 등의 저서 출간.



이예나 그림

멋있는 할머니가 되는 것이 꿈이다. 눈으로 보고 손으로 하는 것은 뭐든 좋아하고 자신 있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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