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부터 학교에서 진로 교육이 의무화가 됐지만 오랜 시간 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며 진로 교육을 해온 교육 선진국들에 비하면 우리의 진로 교육은 걸음마 단계다. 정작 학부모, 학생들은 진로 교육이 무엇인지,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모른다. 진로 교육에 대한 그동안의 오해를 바꾸고, 정의와 기준부터 재정립해봐야 한다.
요즘 '중학교 자유학기제'가 화두다. 교육부의 시범 운영 계획을 보면 "자유학기제란 중학교에서 한 학기 동안 학생들이 중간?기말고사 등 시험 부담에서 벗어나 꿈과 끼를 찾을 수 있도록 토론, 실험·실습, 프로젝트 학습 등 학생 참여형으로 수업을 개선하고 진로 탐색 활동 강화와 함께 다양한 체험 활동이 가능하도록 교육 과정을 유연하게 운영하는 제도"이다.
오는 9월에는 1학년을 대상으로, 내년 3월에는 2학년을 대상으로 약 40개씩의 연구 학교에서 시범 운행을 한 뒤, 2016년부터 전국의 모든 중학교에서 자유학기제를 운영한다는 것이 골자다. 자유학기제는 한 학기 동안 국어?영어?수학 등 기본 과목은 충실하게 하되 암기식, 강의식 수업의 비중을 줄이고 학생들의 진로와 전공을 탐색하기 위한 시간들로 채워진다.
예체능과 기본 교과 융합 수업, 공동 수업, 진로 캠프, 사회 인사 특강 등이 수업 모델로 제시됐다. 중간?기말고사 등 지필 고사는 치르지 않고 대신 수업 진도에 따른 형성 평가, 학생 스스로 자신을 평가하는 자기 성찰 평가 등을 학교별로 마련할 예정이다. 자유학기제 때의 성적은 입시에 반영되지 않는다.
진로 교육의 큰 틀부터 살필 것
교육 전문가들은 자유학기제라는 이슈를 통해 진로 교육에 대한 정의를 다시 내리고, 필요성을 인식하는 시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고용정보원의 '진로 교육 실태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장래 희망이 '없다'고 답한 중학생이 34.4%, 고등학생이 32.2%에 달했으며, 대학 졸업 예정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서도 61.5%가 '진로를 정하지 못했으며, 무엇을 잘할 수 있는지를 모른다'고 대답했다.
이처럼 진로에 대한 고민 없이 대학을 선택하고, 취업을 하면 사회인으로서 적응하지 못하고 뒤늦게 진로를 바꾸는 경우가 많다. 진로 교육을 '진학 지도'로 오해해, 진정한 진로 교육이 이뤄지지 않은 탓이다.
진로 교육은 크게 '자기 이해'와 '세계 이해'로 나뉜다. '자기 이해'는 자신의 흥미, 적성, 성격, 가치관 등을 아는 것이고 '세계 이해'는 다양한 직업 세계와 미래의 트렌드를 알아가는 것이다. 또 진로 교육에서 필요한 것은 세 가지의 균형이다. 첫 번째는 자기 이해와 세계 이해 영역의 균형이다. 현재 진로 교육은 흥미·적성 검사 프로그램, 진로 탐색 캠프 등으로 이뤄지는 자기 이해 쪽에 치우쳐 있다.
직·간접 체험이 필요한 직업 체험 등은 잘 이뤄지지 않는 것. 현재 일부 학교와 지자체에서 실시하고 있는 직업 체험은 학생들이 회사를 찾아 강의만 듣고 돌아오는 등 간접 체험 위주여서 올바른 직업 세계 탐색이 어렵다.
두 번째는 학교와 가정의 균형이다. 학교는 자유학기제를 비롯한 진로 교육 프로그램을 의무적으로 운영하려는 데 비해 가정에서는 아직 뒷받침해주지 못하고 있다.
자녀의 학습에 신경 쓰느라 진로 교육의 필요성을 인식하지 못하는 게 사실. 최근 학부모 진로 코치를 5만 명 양성해 모든 학교에 진로 코치단을 만든다는 발표가 났지만, 무엇보다 각 가정의 밥상머리 교육 등으로 진로 교육이 스며들어야 한다는 게 교육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학부모부터 진로 교육에 대해 제대로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세 번째 균형은 학업과 진로 교육 사이의 균형으로 가장 중요시되는 부분이다. 보통 학부모들은 진로 교육과 학업은 대립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자녀가 성적이 떨어지면 차선책으로 진로 교육을 받아서 다른 분야의 진로를 찾으려고 한다.
혹은 진로 교육을 받다 보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진로 교육은 '공부하는 이유'를 찾거나, 공부 이외의 다른 분야에서의 가능성을 찾는 역할을 한다.
현재는 자유학기제가 중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되지만, 한 학기 동안 진로 교육을 집중적으로 받는 것이 아닌 초?중?고 학창 시절 전반에 걸쳐 단계별로 실시된다면 기존의 학습 시간을 줄이지 않고도 진로를 탐색할 수 있다.
초등.중등.고등, 시기별 진로 교육법
시기별 진로 교육 방법을 알아보면, 초등 시기는 '진로 인식'의 단계이다. 먼저 직업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도록 하는 게 좋다. 아이가 어떤 직업에 관심을 가졌을 때 "그 직업은 힘들어" "돈을 못 벌어" 등 특정 직업에 대해 부정적인 말은 삼간다.
'내가 무엇을 좋아할까'라는 질문에 해당하는 것이 '흥미'인데, 이 시기에는 자녀의 흥미를 관찰하고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글쓰기가 좋다" "블로그를 하는 게 좋다" 등 좋아하는 것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 줘야 한다.
자녀의 관심 영역을 알기 위해서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대형 서점, 도서관에서 자녀가 가장 먼저 달려가는 코너나 가장 오래 머무는 코너를 살펴본다. 많은 아이들이 처음 선택하는 코너는 주로 '만화'인데, 이때는 과학 만화인지, 역사 만화인지, 과학 만화라면 해양, 우주, 생물 등 어떤 분야의 만화인지 살펴봐야 한다.
가장 많은 단서가 있는 곳은 아이의 방이다. 책상 위에 식물도감이 있는지, 로봇이 있는지, 벽에는 어떤 그림이나 사진이 붙어 있는지를 관찰하는 게 중요하다.
중학교 시기는 '진로 탐색'의 시기이다. 적성을 발견하고 '자기 이해'를 하도록 도와줘야 한다. 적성은 흥미, 재능, 성격, 가치관 이 네 가지 기준에 따라 찾는 게 중요하다.
이 네 가지 기준은 "나는 무엇을 좋아할까?"(흥미), "나는 무엇을 잘할까?"(재능), "나는 무엇을 할 때 편안할까?"(성격), "나는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할까?"(가치관)의 질문으로 알아볼 수 있는데 가족끼리 밥상머리에서 꾸준히 대화를 하며 찾는 것이 효과적이다. 이 중에서 가장 찾기 힘든 것은 '재능'. 하지만 네 가지 기준을 갖고 재능 후보군을 넓혀두면 탐색하는 데 도움이 된다. 먼저 아이가 최근 스스로 뭔가를 시작한 것이 있는지 '자발적 반응'을 살펴본다.
두 번째는 엄마가 억지로 시켜서 한 일인데, 해보고 나니 아이가 괜찮았다고 하는 일이다. 세 번째는 중요한 기준인 '학습 속도'. 무언가를 배울 때 빠른 습득 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눈여겨본다.
마지막 기준은 '만족감'으로, 부모가 헷갈리기 쉬운 기준이다. 무언가를 시도하다 결과가 안 좋게 나왔을 때에도 아이가 만족스러워한다면, 이는 미래에 발견될 수 있는 재능에 해당한다.
중등 시기에는 초등 시기에 찾은 3~4가지의 관심 분야를 직업으로 바꿔보는 작업이 필요하다. '잠정 직업', 즉 후보 직업군을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초등학교 때부터 로봇 조립을 좋아했던 아이라면, 중학교 때에는 로봇 공학자, 엔지니어, 과학연구소 연구원 등을, 봉사 활동을 즐겨 했던 아이라면 사회복지사, 상담사, 특수교사 등의 후보 직업을 생각하는 것이다.
고등학교 시기는 '진로 설계'의 시기이다. 생각해둔 3~4가지 잠정 직업 중 도전해보고 싶은 직업을 1~2개로 줄여서 '희망 직업'으로 정한다. 이 과정을 거치면 현재의 성적으로 계열을 결정하고, 모의고사 등으로 지역, 대학을 결정하는 방식이 아닌 정반대의 방식으로 진로에 접근하게 된다.
하고 싶은 직업을 먼저 찾은 후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가야 할 학과를 고른다. 그 학과를 중심으로 대학교 리스트를 뽑고, 그중에서 자신과 가장 적합한 대학을 선택한다.
두 가지 방식의 차이는 분명하다. 전자가 자기 성찰과 직업 탐색의 시간 없이 추상적이고, 기성세대가 원하는 방식으로만 진로를 결정했다면, 후자는 꿈을 먼저 찾고, 그것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마련하기 때문에 진로 설계를 평생으로 이어갈 수 있다.
진로 설계 전, 소통력을 높여라
시기별 진로 교육에서 선행돼야 할 것은 '소통'이다. 진로에 대한 방법론, 정보가 넘쳐나면서 이를 활용하고자 하는 부모들이 늘어나고 있지만, 자녀의 마음이 먼저 움직이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자녀의 마음부터 움직인 후 진로에 대한 정보를 주는 게 중요하다. 소통은 자신과의 소통(적성 찾기), 세상과의 소통(이 사회는 어떻게 구성되는지, 직업 세계와 직업인에 대해 알기), 다른 사람과의 소통으로 구성된다.
다른 사람과의 소통에서 중요한 것은 부모와의 소통이다. 자녀와 소통력을 높이려면 아이의 본심을 먼저 파악하고, 부모.자식 간의 성격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 이런 소통의 기술 위에서 진로 정보를 공유하면 효과적이다. 전공 선택, 직업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선입견을 버려야 한다. 지난해 부모와 고등학생 자녀의 선호 직업을 조사한 연구 결과를 보면 자녀, 부모 모두 1, 2위로 교사, 공무원을 꼽았다.
'선호 직업을 선택한 기준이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대부분 '적성' 때문이라고 답했고, '누가 가장 영향을 미쳤느냐'는 질문에는 '부모'라는 대답이 44%를 차지했다. 실제로 자신이 대학을 다녔던 30~40년 전 시기의 직업 패러다임을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일부 직업을 강요하는 부모가 많다. 하지만 자녀들의 선호 직업 10위 안에는 요리사, 연구원, 사회복지사 등이 등장하는 등 직업 인식은 점점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학생들이 알고 있는 직업의 스펙트럼이 여전히 좁다는 것이다.
현재 고등학생들이 이름을 알고, 설명할 수 있는 직업은 30여 개를 넘지 못한다. 그 좁은 범위 내에서 고른 직업은 확률적으로 자신의 적성, 흥미와 맞기 어렵다. 현재 우리나라의 직업은 1만 개가 넘고, 세계적으로는 2만~3만 개의 직업이 존재한다.
교육 전문가들은 초등학생은 50개, 중학생은 70~80개, 고등학생은 150개 정도 직업을 알면 선택의 폭을 넓힐 수 있다고 말한다. 아는 직업의 스펙트럼을 넓히면 직업과 전공을 서로 연결시킨 '융합 직업?진로'도 고려할 수 있다. 심리학을 전공하는 사람이 뇌과학에 관심을 가지면 최근 떠오르는 직업인 '뉴로마케팅'을 할 수 있고, 심리학과 컴퓨터에 관심을 가지면 '인공 지능 로봇 공학'과 관련한 일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창의적 체험 활동을 활용해 로드맵을 짜라
진로를 '항해'라고 했을 때, 폭풍우를 만나 지도와 나침반을 모두 잃어버린 상태에서 길을 안내해주는 것은 북극성에 해당하는 꿈과 비전이다. 즉, 진로 교육은 진학 방향을 정하고 직업을 찾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꿈과 비전을 갖게 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직업 선택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이 시대에 전 생애를 성공적으로 보낼 수 있는 생애 경로를 설계하는데 핵심이 된다. 이 생애 설계는 로드맵을 통해 가능하다.
로드맵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어떤 직업을 갖고, 어떤 경력을 쌓아서 직업인으로서 어떤 일을 하고 싶다는 것을 설계하는 '직업 로드맵'과 그것을 이루기 위해 초.중.고 시기에 활동 계획을 짜는 것 '활동 로드맵'이 있다. 활동 로드맵을 그릴 때는 올해부터 초.중.고 전 학년에 실시되고 있는 창의적 체험 활동을 활용하면 좋다. 창의적 체험 활동의 자율.동아리?봉사.진로.독서 활동 다섯 가지 기준에 특기 활동을 더해, 뭘 할까를 생각하면 도움이 된다.
로봇 공학자를 꿈꾸는 학생의 로드맵을 예로 들면, 자율 체험 활동으로는 창의적 글로벌 리더십 캠프를, 동아리 활동으로는 교내 과학 동아리 참여를, 진로 활동으로는 직업 체험 캠프. 과학 탐구 대회. 캠퍼스 투어를, 특기 활동으로는 C언어 독학 등을 하는 식이다.
이런 활동 로드맵은 대학 수시 때 내는 자기소개서와 포트폴리오에 활용할 수 있고, 입학사정관제의 경우 학교생활기록부의 비교과 영역으로 기록해 제출할 수 있다. 진로 로드맵은 꿈을 찾는 데 도움이 될 뿐 아니라 학부모와 자녀의 가장 현실적인 고민인 입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방학 때 활용할 수 있는 진로 찾기 팁
강연장에서 멘토 만들기_진로 교육에서 멘토링은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멘토를 만들기란 쉽지 않다. 대형 서점이나 공공 기관에서 하는 독자와의 만남, 강연회 중에서 자녀가 관심 있는 분야를 찾아 듣는다.
누군가 자신이 바라본 세상에 대해 말해줄 때 아이들은 동기 부여가 확실히 된다. 강연이 끝난 뒤에는 강연자에게 좋은 메시지를 써달라고 한다. 이런 메시지들을 몇 장 갖고 있으면 아이의 목표 의식이 뚜렷해질 것. 또 진로에 대해 말할 통로가 엄마밖에 없다면 아이는 답답해한다. 이런 전문가들을 통해 또 다른 통로를 만들어주는 게 좋다.
대학 사이트를 '즐겨찾기' 할 것_책을 통해 직업 정보와 전망을 알려주려고 하면 아이들은 흥미를 갖지 않는다. 대학 홈페이지 사이트는 공부 사이트가 아니기 때문에 부담이 없고 다양한 학과 정보뿐 아니라, 그 학과를 나왔을 때 할 수 있는 직업, 그 직업의 미래 전망 등이 자세히 나와 있다. 즐겨찾기 해놓고 수시로 읽어보면 효과적이다.
직업 카드 놀이로 후보 직업을 선택하라_초등 시기에 하면 좋은 놀이로, 다양한 직업을 알려주기에 효과적이다. 150가지의 직업명과 설명이 적혀 있는 직업 카드를 구입한 뒤 한 장씩 넘겨본다. 관심이 없는 직업이면 오른쪽에, 관심이 있으면 왼쪽에 놓고, 모르는 직업이 나오면 중간에 내려놓는다. 모든 카드를 본 뒤 중간에 있는 모르는 직업 카드들만 다시 보면서 오른쪽, 왼쪽을 가른다.
필요한 자격증, 전망, 적성 등이 적힌 설명을 읽어보면서 흥미가 생기는지를 판단한다. 보통 아이들은 관심 있는 직업을 5~10개 정도 선택하는 편. 주기적으로 하면 후보 직업을 정하고 좁혀가는 데 효과적이다.
기획_지희진 사진_강민구, 하지영(studio lamp) 어시스턴트_최은영
출처 : 여성중앙 8월호 2013.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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