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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文學은 서울이나 상아탑에만?.. 부산은 퇴근길에 있지요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13-06-19 | hit : 4110
부산 중구 동광동의 인문학 북카페 '백년어서원'. 지난 5일 이곳에서는 20대부터 40대까지 남녀 스무 명이 벽걸이 스크린을 응시하고 있었다. 백년어서원의 6월 수요 강좌 '부산독립영화, 현재를 말하다' 첫 회. 부산에서 제작된 독립영화를 관람하고, 감독과 함께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다.

"영화에 담긴 삶의 현장을 보면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고민해보자고 마련했어요. 인문학이 별건가요." 강의를 주최한 박윤희(47) 편집장이 말했다.

↑ [조선일보]‘바까데미아’를 이끄는 박윤희·이민아·정천구씨(왼쪽부터). /남강호 기자

↑ [조선일보]부산에서 인문학이 낮아지고 넓어졌다. 지난 5일 중구 동광동의 북카페‘백년어서원’에 모인 시민들이 독립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남강호 기자

부산에서 인문학 저변이 넓어지고 있다. 시민 중심의 자발적 열풍이다. 진원지는 백년어서원이 진행하는 '바까데미아'. '상아탑 바깥의 아카데미아'라는 뜻이다.

◇상아탑 밖 인문학의 진지전


백년어서원은 김수우(54) 시인이 2009년 문을 연 이래 500회 넘는 인문학 강좌를 진행했다. 고전학자 정천구(46) 박사가 진행하는 '월요 고전 강의'가 대표적.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강의가 33주간 열렸고, '논어' '맹자'에 이어 '순자' 강의가 한창이다. 매주 월요일 저녁이면 공무원·변호사·주부 등 40~50대 열댓 명이 두꺼운 책을 끼고 카페로 모인다. 정씨는 "퇴근 후 피곤할 텐데도 꼬박꼬박 찾아오는 분들을 보면서 부산 시민들이 얼마나 고전에 목말라 있는지 새삼 느낀다"고 했다.

지난 5월 열린 '편지 콘서트'는 '일상에서의 인문학 실천'이라는 바까데미아의 정신을 보여준다. 손글씨로 편지를 써서 직접 낭독하는 행사다. "앎을 피상적으로 만들지 않고 삶에 대한 성찰과 소통으로 이어보자는 거죠. 올해 3회째 열렸는데 400통이나 응모했어요." 청소년을 위한 독서와 글쓰기 프로그램인 '아르케 인문독서교실'도 인기다.

바까데미아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면서, 인문학 강좌가 부산 전역에 번졌다. 북카페 형식으로 강의를 결합한 공간이 늘었고, 시청·구청에서도 노하우를 배우러 찾아왔다. 정천구씨는 "몇 년 전까지 부산에서는 인문학 강좌는 찾기 힘들었고, 웬만한 저자 강의를 들으려면 서울까지 가야 했다"며 "바까데미아의 프로그램을 통해 인문학 문턱이 낮아졌다"고 했다.

초기 강좌 중심에서 최근엔 글쓰기와 사유를 포함한 독서 운동으로 범위가 넓어졌다. '맘대로 읽고 멋대로 써라!'가 캐치프레이즈로 7월 31일까지 '백년서평'을 공모한다. 자격은 부산에 거주하는 시민. 캔더스 B 퍼트의 '감정의 분자', 김영민의 '동무론', 매튜 스튜어트의 '스피노자는 왜 라이프니츠를 몰래 만났나', '순자' 등 4종이 대상이다. 인문학이 자기 성찰로 이어지려면 독서, 사유, 글쓰기를 결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성격도 변했다"

"삶이 변했다"는 게 참가자들의 얘기다. 아내와 함께 9개월째 고전 강의를 듣는 김정무(54)씨는 "인문학과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논어와 맹자를 들으면서 신세계가 열렸다"고 했다. "앞만 보고 허겁지겁 달려오다가 우연히 강의를 듣기 시작하면서 충격을 받았다. 지금까지 내가 알던 건 뭔가. 읽는 족족 더 큰 세상이 보였다. '나만 옳다'는 아집도 무너졌고, 너그러워졌다. 대인관계, 사회생활에도 도움이 된다."

4년 동안 바까데미아 모든 강의를 들었다는 시인 지망생 정영민(27)씨는 "대학에서 배울 수 없는 것을 여기서 배웠다. 니체, 상고사 등을 폭넓게 읽고 고전을 연구하면서 세상을 크게 볼 수 있게 됐다. 생각하는 힘을 얻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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