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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중력 아이들’ 치유·극기 도와주는 ‘특별한 2곳’ 본문‘무중력 아이들’ 치유·극기 도와주는 ‘특별한 2곳’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12-12-29 | hit : 1796

음악으로 기타 치고 드럼 치며 상처 보듬는 사회적기업 '유자살롱'


지난 3일 서울 영등포구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가족이나 친구 70~80명이 지켜보는 파티에서 아이들은 3개월간 익힌 악기 솜씨를 맘껏 뽐냈다. 들국화의 '매일 그대와'를 연주하는 그룹 밴드도 무대에 올라 박수를 받았다. 사회적기업 '유자살롱'의 '집밖에서 유유자적' 프로젝트(6기)에 참여했던 탈학교 아이들이 음악을 통해 상처를 치유하고 다시 세상과 만나는 자리였다.

무대에 선 박영수군(18·가명)은 고교 진학을 포기한 아이였다. 그는 중학교 3학년 때 자신을 따돌리고 바지를 벗기며 괴롭히던 친구가 같은 고교에 배정되자 학업을 중단해버렸다. "수업도 흥미가 없었는데 친구가 무서워 학교 가기 더 싫어졌다"는 것이다. 자퇴한 박군은 검정고시를 치를지, 유학을 갈지 결정하지 못한 채 방황했다. 방 밖으로 나가지 않는 시간이 길어졌다. 기력을 잃고 생활이 불규칙해지자 건강도 나빠졌다. 지난 9월 부모가 박군의 손을 잡고 찾은 곳이 유자살롱이었다.

박군은 처음엔 누구와도 말하지 않고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일주일에 세번씩 왔지만 끝나면 바로 집에 가버렸다. 그러다가 서서히 악기를 다루는 즐거움을 알게 되자 스태프 1명과 말문을 텄다. 공연을 하면서 친구들도 하나둘씩 늘어갔다. 규칙적인 생활을 되찾자 건강도 좋아졌다. 박군은 "조금씩 작곡을 하고 있다"며 "대학에 진학할 생각은 아직 없지만 일단 대입 검정고시는 볼까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탈학교 청소년들과 음악으로 소통하는 사회적기업 유자살롱의 이충한 공동대표(맨 왼쪽)와 멤버들이 지난 26일 사무실이 있는 서울 영등포구 하자센터에 모여 웃고 있다. |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유자살롱은 사회와 학교 어느 곳에도 발붙이지 못하는 '무중력' 청소년들을 음악으로 치유하는 사회적기업이다. 작곡·편곡가와 인디밴드 멤버 등 음악인 4명이 교육을 맡고, 디자인·대외협력 일을 하는 직원 2명이 돕고 있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이지만 자기만의 시계를 갖고 유유자적하며 살자는 게 모토다.

'유유자적' 프로젝트는 2010년 9월 1기생 10명으로 출발해 기수마다 7~8명의 탈학교 아이들을 선발해 3개월간 함께하고 있다. 프로젝트를 마치고도 종종 들르는 아이들이 많아 음악 수업 때 40명 넘게 어울릴 때도 있다. 전일주 대표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고 싶어하지 않는 것은 아이들이 원하는 걸 학교가 제공해주지 않기 때문"이라면서 "충분히 가족과 부대끼고 친구들과 떠들며 뛰놀고 싶어하는 아이들을 위해 유자살롱이 출발했다"고 말했다. 조기교육과 학습만 강요하는 학교시스템에 지친 아이들의 에너지를 북돋고, 세상 밖으로 한발짝 더 나오게 하는 인큐베이터이자 놀이터라는 것이다. 수업료는 3개월에 120만원. 하지만 저소득층 청소년에게는 무료 혜택이 주어지기도 하고, 개인 사정에 따라 감해주기도 한다.

유자살롱은 처음 악기를 가르칠 때 일대일로 한다고 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집 밖으로 나오지 않아 오랫동안 사람을 만나지 않은 아이들은 그룹 프로그램이나 여러 사람이 한 공간에 있는 것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수업이라고는 하지만 별도의 악보나 진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이가 기타로 쉬운 곡을 치면 강사도 다른 악기로 협주하고 같이 노래하는 식이다. 일대일 수업이 익숙해지면 기타 치고 드럼 치는 아이가 한 팀이 돼 간단한 놀이를 하면서 자연스럽게 어울리도록 하고 있다. 고서희 팀장은 "한 아이가 악기를 할 줄 알게 되고 연습하고 실제 공연까지 해내는 과정 자체가 성과라고 생각한다"며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고 박수를 받는 놀라운 경험을 통해 무엇보다 아이들의 자존감이 커지는 것을 느낀다"고 말했다.

여행으로 책 읽고 현장서 보고 느끼고 길 위의 대안학교 '로드스꼴라'

지난 4월 비인가 대안학교인 '로드스꼴라'의 아이들 13명이 볼리비아, 페루, 아르헨티나를 찾았다. 포스트모더니즘이 시작된 남미문학을 미리 공부하고 떠난 2개월의 여행길이다. 아이들은 아르헨티나 작가 마누엘 푸이그가 < 거미여인의 키스 > 를 쓴 무대인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답사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페루의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가 < 염소의 축제 > 에서 담은 독재의 참상과 흔적도 봤다. 커피·카카오 농장도 찾았고, 공정무역이 21세기의 새로운 희망 산업이 될지도 가늠해봤다. 아이들의 노트와 카메라는 여행기가 됐다. 서정현씨(21)는 "두 달간의 남미여행을 통해 세상을 보는 시야가 넓어지고 여유도 생겼다"며 "그 기억들을 모아 친구들과 공동집필을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른 아이들도 책이나 사진집, 영상으로 '여행'을 담아내고 있다고 했다.

서씨의 얼굴은 밝았다. 하지만 얼마전까지도 그렇지 못했다고 했다. 학교와 인간 관계에 대한 실망으로 학업을 중단하고 2년간 은둔형 외톨이로 방에서 뒹굴다가 3년 전에야 세상밖으로 나왔다는 것이다.

서씨는 초등학생 때 친구들로부터 '왕따'를 당하면서 성격이 소심하고 내성적이 됐다고 했다. 중학교에 올라가서도 성적은 중상위권이었지만 동급생들과 어울리지 못했다. 힘 없는 아이를 때리고 선생님을 조롱하는 아이들이 싫었다. 사춘기까지 겹쳐 우울감이 심해진 그는 중3 때 부모에게 고등학교에 가지 않겠다고 말했다.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했지만 컴퓨터나 TV만 보면서 방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마냥 흘렀다. 2008년 대입 검정고시를 통과했지만 뭘 해야겠다는 의욕은 생기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TV 다큐멘터리에 나온 로드스꼴라를 접했다. 서씨는 "내가 글쓰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이곳에서 알았고, 많은 여행을 하면서 어떤 위험한 상황을 만나도 유연하게 부딪칠 수 있는 담력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작가가 되고 싶다고 했다.



비인가 대안학교인 로드스꼴라 아이들이 지난 4월 남미문학여행 중에 들른 볼리비아의 소금사막에서 하늘을 향해 껑충 뛰어오르고 있다. | 로드스꼴라 제공

로드스꼴라는 여행을 매개로 철학과 역사, 인문학을 공부하는 비인가 대안학교다. 책으로 배우고 여행 가서 직접 듣고 보고 느끼는 학교다. 서울시립청소년직업체험센터 '하자'와 사회적기업 '맵(MAP)'이 손잡고 2009년 3월 문을 열었다. 기수마다 15명 안팎인 학생들은 현재 15세부터 22세까지 섞여 있다. 대개 자의나 타의로 일반 학교를 그만둔 아이들이다. 2년간 4학기 과정을 마치면 학교를 수료하고, 여행사 '트래블맵'에서 1년간 인턴을 하면 여행기획자로 살 수 있다.

학생들은 첫 학기엔 마을 프로젝트를 한다. 특정한 마을을 찾아가 한달간 합숙하면서 마을의 역사와 지도를 익히고, 할아버지·할머니들을 인터뷰하고, 도보여행길을 만드는 작업이다. 2학기는 한·일 고대사나 고려인, 하와이 이민 이야기를 현장에서 배우는 역사여행을 한다. 3학기는 공정무역을 주제로 세계의 이웃들과 어떻게 교류하고 소통할지 묻는 여행을 한다. 영어·환경·글쓰기 교육을 받고, 미리 여행 주제에 맞는 책을 읽고 걷는 훈련도 받는다. 4학기에는 각자가 영화제나 콘서트, 책 출판 등을 통해 그간의 작업 결과물을 발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한 학기 수업료는 160만원이고, 여행·프로젝트 경비는 주제별로 학생들이 부담한다. 김현아 대표는 "생생한 역사·문화 현장과 동시대인의 희로애락을 길 위에서 만나고 스스로를 돌아볼 수 있는 게 여행의 장점"이라며 "국경·인종·계급을 훌쩍 뛰어넘는 체험도 삶의 자산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 박주연 기자 경향신문 2012.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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