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선비 추사(秋史) 김정희는 문사철시서화(文史哲詩書畵)에서 두루 최고의 경지에 오른 예술가이자 학자였다. 그는 “가슴속에 만 권의 책이 들어 있어야 그것이 흘러넘쳐서 그림과 글씨가 된다”고 일갈했다. 고된 제주도 귀양살이에서도 단아하고 고고한 품위를 잃지 않은 추사의 사의가 잘 드러나 있는 작품이 `세한도(歲寒圖)'다. 중국에 다녀올 때마다 귀한 서책을 구해 전해준 제자에게 추사가 고마운 마음을 표하고자 그려 준 그림이다.
▼국내에는 `독서의 역사(세종서적 간)'로 번역된 알베르토 망구엘의 `읽기의 역사(A History of Reading)'에 의하면 인류사는 읽기의 진화다. 망구엘은 `읽기'를 `의미를 알아내는 행위'라고 설명했다. 현상과 기호를 해독하는 일이다. 농부들은 날씨를 알기 위해 하늘을 읽었고 어부들은 바닷물의 흐름을 읽어야 했다. 의사들은 환자의 증상을 통해 병을 읽어냈다. 연인의 마음을 읽어야 했고 악보를 읽어야 연주가 가능하다.
▼데카르트의 어법대로라면 `나는 읽는다, 고로 존재한다'이다. 급변하는 현대사회에서 읽기가 미흡하면 곧 퇴보다. 국민 독서율을 보면 그 나라의 선진화, 국격을 알 수 있다는 게 정설이다. 일본인들이 `지(知)의 거인'으로 치켜세우는 논평저술가 다치바나 다카시는 도쿄에 서재빌딩을 갖고 있는 독서광이다. 그가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청어람미디어 간)'에서 교양교육 붕괴를 질타한 것도 독서 강조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올해를 `국민 독서의 해'로 정했다. 그러나 추진위원회 구성조차 안 된 상황이어서 답답하다. 하지만 강릉시는 시립도서관 등과 함께 북스타트 운동, 시민 독서·교육·문화 프로그램을 연중 운영한다고 밝혀 문향(文鄕)을 읽게 한다. 추사의 조언이다. `서권기 문자향(書卷氣 文字香)'이다. `책을 많이 읽고 교양을 쌓으면 몸에서 책의 기운이 풍기고 문자의 향기가 난다'는 뜻이다.
용호선논설위원·yonghs@kw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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