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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들의 우리말 실력
작성자 : 박종은 작성일 : 09-12-02 | hit : 4856
판결문으로 본 판사들의 우리말 솜씨


틀린 맞춤법ㆍ비속어,`숨막히는' 만연체
(서울=연합뉴스) 차대운 기자 = 우리나라 최고의 엘리트 집단으로 통하는 판사들의 국어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연합뉴스가 한글날을 하루 앞둔 8일 판사들이 바른 우리말을 쓰는지 알아보려고 법원 전산망 코트넷에 등록된 판결문들을 분석한 결과 많은 판사들이 맞춤법을 틀리는 등 한글 사용에 적지 않은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 사시미(?)…비속어ㆍ일본식 표현 = 조직폭력배들의 입에나 오르내릴 법한 `사시미칼'이라는 단어를 형사 사건 판결문에서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일본어로 `생선회'라는 뜻의 `사시미(刺身)'가 그대로 쓰인 것인데 이를 `회칼'로 바로잡지 않고 그대로 판결문에 올린 것이다.

"범행을 위해 사시미칼 등 범행 도구를 구입하여 피고인의 고시원 방에 가져다 놓았다"(서울중앙지법 판결)는 식이다.

반면 "숙소에 보관하고 있던 회칼(총길이 40.5㎝, 칼날길이 26.5㎝)을 신문지에 말아 옷 속에 넣은 후…"(광주지법) 같이 바르게 쓴 경우도 많다.

공사판에서나 쓰일 `빠루'라는 말도 형사 판결문에서 자주 등장한다.
닫힌 문을 부수려고 이것을 쓰다 붙잡힌 도둑들이 적지 않아서인데 굵고 큰 못을 뽑는 이 연장은 `배척' 또는 `노루발못뽑이'라고 써야 옳다.

굳이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쓰임을 피하는 것이 좋은 일본식 단어들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고 있다.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쉬운 우리말 `갓길'로 바꿔쓸 수 있는 `노견(路肩)'이라는 말은 올해 53건을 포함해 1천665건이 검색됐다.

`고수부지'란 단어가 들어간 판결문은 1건665건으로 `둔치'라는 순우리말이 들어간 판결문 268건보다 많았다.

◇ 틀린 맞춤법ㆍ제멋대로 외래어 표기 = `서슴지 않다'라고 써야 할 것을 `서슴치 않고'라고 잘못 쓴 판결문은 477건으로 제대로 쓴 840건의 절반에 가까웠다.

"사기 행각이 발각될 것을 우려해 문서위조라는 또 다른 범행까지 서슴치 않고 자행한 점 등을 종합해보면 원심의 형이 너무 무거워 부당하다고 인정되지 않는다"(서울고법) 같은 경우다.

교통사고나 보험금 판결문에 등장하곤 하는 `복사뼈'는 `복숭아뼈'로 잘못 쓴 경우가 118건으로 맞게 쓴 64건보다 많았다.

자주 사용되는 편은 아니지만 전통무술의 하나인 `태껸'을 제대로 쓴 판결문은 단 한 건도 없었고 잘못 쓴 `택견'이라는 말이 들어간 판결문만 100건이 나왔다.

보도블록도 틀린 경우가 더 많아 맞게 쓴 경우는 1천361건, `보도블럭'으로 잘못 쓴 판결문은 2천709건이었다.

외래어 표기법을 제대로 따르지 않은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내비게이션은 제대로 표기한 판결문이 304건인데 반해 `네비게이션'이라고 잘못 적은 것은 1천541건이나 됐다.

렌터카도 바르게 적은 것은 1천735건에 불과했고 무려 1만2천137건의 판결문에서 `렌트카'라고 잘못 적혀 있었다.

국가 명칭인 싱가포르는 `싱가폴'로 잘못 쓴 판결문이 745건, 맞게 쓴 것이 1천17건으로 큰 차이가 없었다.

이 밖에도 슈퍼마켓을 수퍼마켓, 멤버십을 멤버쉽, 초콜릿을 초콜렛 또는 초코렛으로 잘못 적은 경우도 꽤 있었다.

◇ "숨 넘어갈라…" 만연체 여전 = 판결문을 쉽고 간결하게 쓰자는 법원 내부의 운동으로 예전보다 판결문이 쉬워진 것은 틀림없지만 여전히 한 문단, 길게는 한 페이지 이상을 끊지 않고 써내려가는 만연체 문장도 적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살피건대, 원심의 위 설시는 적절하고, 뿐만 아니라 원심과 당심이 적법하게 채택하여 조사한 증거들에 의하여 인정되는 다음의 사정들 즉, 이 부분 공소사실에 부합하는 증거로는 공동 피고인 ○○○의 수사기관에서 진술 등이 있는 바, ○○○은 원심 법정에서 이와 배치되는 진술을 하고 있어 그 진술의 일관성이 없을 뿐 아니라, 수사기관에서의 진술은 피고인 등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책임을 전가시킴으로써 가급적 자신의 책임을 축소시키려는 의도 하에 행해졌을 가능성이 있는 점…"(서울고법)과 같이 한 문장이 A4용지 한 장을 넘는 판결문을 찾아보는 것은 여전히 어렵지 않다.
연합뉴스 | 입력 2009.10.08 setuzi@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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