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당신은 이 사회, 삶에 대해 어떤 질문을 할 수 있나요”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09-05-08 | hit : 2197

ㆍ인문학 공개강좌 ‘경제인류학 수요콜로키움’ 진행 조한혜정 교수



조한혜정, 장하준, 최재천, 우석훈….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스타급’ 학자들이다. 이들은 자신의 전공 분야에서 독보적인 성취를 이뤘고 두꺼운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 인기강사의 강연을 한자리에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 조한혜정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61)가 <88만원 세대>의 저자 우석훈 박사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공개강좌 ‘경제인류학 수요 콜로키움’에서다.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로 번져 나가면서 ‘신자유주의의 종언’이 운위되는 시대다. ‘…수요 콜로키움’은 신자유주의를 반성하고 그 이후의 경제 질서를 고민하자는 취지로 개설한 강좌다. 조한 교수가 먼저 아이디어를 냈고 강사들도 조한 교수가 직접 섭외했다. 1주일에 한차례씩 매주 수요일 권헌익 영국 에든버러대 교수,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 등 ‘화려한 출연진’들이 강사료를 사실상 받지 않고 기꺼이 연단에 선다. 조한 교수의 표현을 빌리자면,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 무상으로 지식을 나눠주는 일종의 ‘지식 품앗이’다.



지금 왜 이 같은 인문학 강좌가 필요한 것일까. 지난달 30일 연세대에서 조한 교수를 만나 물었다. 조한 교수는 “돈만이 자유로운 ‘자유주의’ 사회에서 어떻게 경제를 다시 사회 안으로 끌어들일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라며 “사회와 경제의 관계에 대한 대안적 패러다임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청소년 대안문화 공간인 ‘하자센터’의 센터장이기도 한 그는 “요즘 아이들은 ‘이겨야 산다’는 식의 경쟁밖에 모르는 세대”라며 “그런 아이들을 지혜롭게 만들어 질문을 제대로 던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하고 있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들어 ‘…수요 콜로키움’을 비롯해 시민들을 위한 인문학 공개강좌가 많이 열립니다. 경제가 어려워지면 인문학의 인기도 높아지는 건가요.



“사람들이 안정돼 있으면 삶이 무엇인지 물어볼 필요 없잖아요. 경제가 어렵다는 것도 시기의 문제일 텐데 지금은 그야말로 혼란기이고 시대적 전환기잖아요. 이럴 때는 인문학적인 질문을 할 수밖에 없죠. 내가 사는 게 제대로 사는 건가. 부족사회를 보면 경제가 어려울 때 오히려 예술을 해요. 먹을 것을 찾아 다닐 수도 있지만 어차피 찾아도 없으면 그때는 그냥 아름다운 음악을 하는 거죠. 그럼 밥을 두 끼만 먹어도 행복한 거예요. 그런 사고를 전혀 하지 못하면 폭력적이 되거나 아귀(餓鬼)가 되는 거죠. 없는 것도 나누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고 그런 삶은 죽을 때도 위엄 있고 아름답잖아요. 어떻게 죽을 것인지, 어떻게 살 것인지 물어야 하는데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질문 자체를 못하게 하고 있어요.”



-‘…수요 콜로키움’은 어떻게 시작된 겁니까.



“지난해 연세대에 문화인류학과가 처음 생겼고 올해부터 2학년 학생들이 전공 수업을 듣고 있어요. 전통적으로 인류학은 서양에서 비(非) 서구사회를 연구하는 것인데 식민지도 없는 한국이 왜 인류학을 해야 하는 건지, 21세기에 문화인류학과가 생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건지 첫 학기니까 제대로 알려야 할 필요가 있었고요. 인류학은 전근대를 주로 다루면서도 인류 전체의 흐름을 통찰하는 학문이에요. 지금 근대의 종말이 거의 왔잖아요. 근대의 대안을 찾아야죠. 인간이 무엇이냐, 경제는 무엇이냐, 이런 근본적인 질문을 해야 하는 시점인 겁니다. 자유주의 사회라고 말하는데 실제로는 돈만이 자유로운 사회잖아요. 그럼 이 다음 사회는 대체 어떤 것이어야 하느냐, 이런 것들을 이 강좌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전공자가 아닌 사람들에게 ‘경제인류학’은 다소 생소한 분야일 것 같습니다. 무엇을 연구하는 학문인가요.



“인류학 내의 한 분과예요. 사회적 경제(Social economy)라는 말이 있듯이 사실 경제는 사회로부터 분리된 적이 없어요. 사람들은 돈이라는 것이 독자적인 영역을 갖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데 경제 활동은 항상 사회의 일부였다는 거죠. 하지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인간사회는 자본 자체가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고 자본이 다른 것을 무화시키는 사회로 가고 있습니다. 경제가 사회를 먹어버리는 상태라면 어떻게 다시 사회가 경제를 먹어들어갈 수 있도록 변화를 만들어 갈 것인가, 그리고 이 변화를 만들려면 사회를 보는 시각 자체가 새로워야 하는데 삶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제대로 보이지는 않지만 이 사회에 존재하는 것들은 무엇인가, 이런 것을 바라보는 통찰력을 인류학이 제공하고 있다는 거죠. 경제사학자 칼 폴라니 같은 사람은 경제에는 실질 경제(subsistent economy)와 공식 경제(formal economy)가 있다고 합니다. 경제학에서 다루는 게 공식 경제인데 그것은 경제의 극히 일부분인 거예요. 실질 경제 안에는 상호 호혜(reciprocity) 같은 것들이 있죠. 예컨대 단골과 가게 주인이 물건을 사고 판다면 오랜 시간에 걸쳐 형성된 관계 속에서 교환이 이뤄지는 것이지 단순히 돈만 교환되는 게 아니잖아요. 경제인류학에서는 이처럼 사회와 경제의 맞물림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것인지에 대해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고 있습니다.”



-‘…수요 콜로키움’에는 조한 교수와 우 박사 등의 강연을 포함해 14회의 강의가 진행됐거나 예정되어 있습니다. 콜로키움의 강사들은 어떤 기준으로 선정했습니까.



“지금 우리가 알아야 하는 대안적인 패러다임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분들이죠. 경제학에서는 거의 교환으로만 얘기를 하지만 경제인류학 내에는 선물경제(gift economy)나 상호 호혜 같은 개념이 있어요. 전근대 사회의 사례에서 나온 개념들이긴 하지만 이런 것들이 근대, 탈근대 사회에서는 어떤 식으로 읽힐 수 있는지 이 시대를 사는 사람의 문제의식과 연결해서 말씀해 줄 수 있는 분들을 모셨습니다.”



-콜로키움에서 강연하는 교수들에 대해 서로 ‘품앗이’ 관계에 있는 ‘이웃사촌’이라고 말씀하시는데, 품앗이라면 강사들은 보수를 받지 않고 강연하는 건가요.



“그것도 우리가 한참 논쟁을 했는데, 서양에서는 서로 지적인 자극이 되면 돈을 별로 안 줘요. 차비 정도는 줄 수 있겠지만. 그래도 ‘한국 사회가 그렇지 않다, 강사료를 제대로 챙겨줘야 한다’는 의견이 있어서 조금씩 드리고 있어요. 우리 콜로키움에 오는 강사들이 보통 강사료로 100만원은 받는 분들이라서 차라리 안 주는 게 나을지도 모르지만(웃음). 저는 돈이 없어서 이런 강좌를 안 한다는 것은 정말 바보같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돈이 없으면 그냥 품앗이를 하면 되잖아요. 돈은 안 주지만 그럼에도 기꺼이 오는 모임이 돼야 한다는 거죠. ‘또하나의 문화(조한 교수 등 페미니스트 10여명이 주도해 1984년 창립한 여성주의 운동모임)’에는 오래 전부터 품앗이를 해왔던 전통이 있어요. 새로운 지적 공동체를 만들어 간다는 것 자체에 대해 전부 기분이 좋기 때문에 원고료가 다른 곳의 5분의 1밖에 안 돼도 글을 쓰고 어떨 때는 자기 돈을 내서라도 책을 만들어요. 아주 작은 움직임이지만 자본주의를 극복하는 움직임이기도 하죠. 요즘 ‘일하는 빈곤층(working poor)’이라는 말을 하는데 열심히 일해도 88만원밖에 못받는 사람도 ‘일하는 빈곤층’이지만 100시간을 일하는 사람도 ‘일하는 빈곤층’인 거예요. 우리가 시간이라는 개념은 전혀 생각하지 않고 돈만 좇고 있는 건데 사실은 그게 아니죠. 누군가 죽거나 다쳤을 때 보험금이 얼마가 나오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 사람을 도와주거나 진심으로 위로해 줄 사람이 몇 명이나 되느냐는 식의 사고를 해야 하는 겁니다.”



-강사 대부분이 경제학이나 인류학을 전공한 교수들인데 최재천 교수(이화여대 생물학)처럼 전공이 무관해 보이는 분도 참여하시는군요.



“최재천 선생님은 인간의 본성이 이타적인지 이기적인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잖아요. 인류학에서는 인간을 영리한(clever) 동물이면서 동시에 지혜로운(wise) 동물이라고 보는데 인간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지혜로웠기 때문이라고 가르쳐요. 지혜롭다는 것은 인간이 집단을 존속시키기 위해 덜 영리해지고 개인적인 계산을 덜 하는 것을 말하죠. 그러나 자본주의는 영리한 인간만 기르는 사회잖아요. 그래서 우리 아이들이 경쟁밖에 모르는 겁니다. 승자독식, 이겨야 산다, 이런 식의 것들이 인류사회에서는 굉장히 특별한 케이스예요. 인류가 약육강식도 하고 영리하기도 해야 하지만 어떤 시점에 가서는 지혜로워야 하거든요. 우석훈 박사가 ‘요새 아이들은 전부 가가멜이지 스머프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죠. 05·06학번 학생들부터는 선행학습에서 길러진 아이들이라 단기적인 경쟁에서 이기는 것밖에는 못해요. 당장 ‘스펙(취업하기 위해 필요한 학점·토익 점수·어학연수 경험 등을 말함)’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는 것 외엔 모르는 거죠. 이 경쟁에서 이긴 아이들이 ‘엄친아(엄마 친구 아들)’가 되고 그 애들을 보면 배가 아프고 스트레스 받는 메커니즘이 있잖아요. 아이들에게 ‘영리해야 살아남는다’는 강박을 이 사회가 주입시킨 겁니다. 그런 아이들을 어떻게 지혜롭게 만들 것이냐는 게 지금 우리가 기본적으로 하고 있는 작업이에요. 질문을 제대로 던질 수 있게 만드는 거죠.”



“가슴이 작동하는, ‘돌봄의 감수성’ 끌어내야 청년문제 풀린다”



지난달 10일 ‘경제인류학 수요 콜로키움’ 인문학 강좌를 듣기 위해 강의실을 가득 메운 학생과 일반인들이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의 강의를 경청하고 있다. |박재찬기자



-이 수업을 듣는 학생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준비된 학생들은 좋아하고 준비가 안 된 학생들은 힘들어해요. 하지만 저는 길게 보기 때문에 학생의 80% 이상을 만족시키는 강의는 좋은 강의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준비가 안 됐을 때는 소외를 당한다는 경험, 또는 ‘그때 더 열심히 할 걸’ 하면서 후회하는 경험을 해보는 것도 중요하거든요. 후회도 한 번 안 하고 계속 선생 눈치 보면서 학점이나 잘 받는 건 삶이 아닌 거니까. 시간성을 놓고 사고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하는데, 지금 대학 수업은 ‘100% 학생들을 만족시킬 수 있냐’ ‘강의 계획서대로 강의를 했냐’ 하면서 사람들을 기계적으로 만들잖아요. 아이들 스스로 시간이라는 것이 있고 이게 소중한 것이구나 깨닫고, 시간에 엮인 스토리들, 관계들을 볼 수 있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제대로 된 삶을 살지 못하죠.”



-조한 교수는 ‘하자센터(서울시립 청소년 직업체험센터)’의 센터장도 맡고 있습니다. 하자센터는 10대들과 함께 의미있고 재미있는 일을 많이 벌여왔는데 최근엔 20대를 위해 사회적 창의기업의 인큐베이터 역할을 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10대 청소년들에게 집중하던 하자센터가 20대로 공간을 넓혀가는 느낌인데요.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 10대 탈학교 아이들이 생기고 이들이 대안학교로 갔는데 이젠 20대들이 죽을 쑤잖아요. 10대들 잘 키워봤자 희망이 없는 거죠. 기존의 국가 체제에서 20·30대를 위한 일자리를 만들려고 하면 결국엔 집 짓고 토건하는 것밖에는 발상이 나오지 않아요. ‘서태지 세대’라고도 하는 20·30대들은 문화적인 감수성과 취향을 가진 인류예요. 이 친구들이 다음 단계로 나아가도록 해야 했는데 우리 사회가 그것을 잘하지 못했던 거죠. 2000년대 학번, 그러니까 선행학습 세대 학번으로 오면 문화적 감수성이 거의 없어요. 있을 리가 없죠. 굉장한 위기예요. 이 시점에서는 서태지 세대가 가졌던 장점들이 있을 테니까 그 친구들이 나름대로 사회에 참여할 수 있도록, 새로운 사회적 기업 같은 것을 만들 수 있도록 확실히 지원하는 게 중요해요. 20·30대가 잘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05학번 이하 세대들이 ‘우리가 괴물이구나’ 알아차리지, 서태지 세대가 죽을 쑤면 선행학습 세대들은 자신들이 잘하고 있는 줄 알고 계속 자기들끼리 경쟁하겠죠. 결국에는 전부 지는 게임일 텐데…. 그런 맥락에서 20·30대가 정말 잘해야 하는 때인 것 같아요.”



-하자센터에서는 ‘제1회 서울 청소년 창안대회’가 진행 중입니다. 어느날 갑자기 부모님과 집이 사라진다면 이 도시에서 어떻게 스스로 살아남을 것인지 아이디어를 제출하라는, 다소 특이한 대회인데.



“90년대 기업에서 말하는 창의성이란 광고 문구가 잘 나오는 또는 멋진 디자인을 잘하는 것을 말했어요. 디자인이나 광고의 발상이 뛰어나면 이것이 제품 홍보가 되고 판매로 이어지잖아요. 그런데 이런 창의적인 인간은 선행학습 세대에서는 안 나와요. 나올 수가 없죠. 지금 시대를 사는 우리한테는 이런 위기 상황을 극복해갈 수 있는 창의력이 필요해요. 창의성이란 건 위기에서 대안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인 거죠. 그래서 아이들한테 갑자기 부모님이 없어지고 집도 없어졌을 때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지를 묻는 거예요. 이 서울이라는 도시가 어떤 자원을 갖고 있으며, 너는 친구가 몇 명이며, 친구한테 의지하지 않겠다면 왜 그런 것인지. 왜 이런 질문을 아이들한테 해서 공포를 주냐고 하는 어른들도 있는데 실제로 요즘 아이들은 그런 공포를 정말로 갖고 있어요. 서태지 세대는 집을 나가려고 했고 ‘가출충동 느껴본 적 있다’는 응답자가 80%에 육박했는데 요새 애들은 쫓아내도 안 나가요. 굉장한 불안의 세대잖아요.”



-10대와 20·30대의 문제를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인문학은 어떤 대안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청년들이 사회를 위해 제대로 살게 하려면 노동 위기의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매사추세츠대 경제학과 교수 낸시 폴브레가 쓴 <보이지 않는 가슴(돌봄 경제학)>이라는 책이 있어요. 애덤 스미스가 얘기한 ‘보이지 않는 손’은 돈의 작동만을 얘기하는데, 사실은 그것과 다른 사이클로 작동하는 보이지 않는 가슴, 내지는 돌봄이라는 것이 있어요. 저는 요새 ‘돌봄의 위기’를 많이 얘기합니다. 돌봄이라든지 가족이란 게 거의 파탄났잖아요. 요즘 애들은 형제 관계도 나빠요. 내가 안 쓰면 쟤가 더 쓸 거니까 내가 돈을 더 많이 쓴다든지, 재산을 물려받을 형제들끼리 싸우는 거예요. 굉장히 무서운 사회죠. 그런데 20·30대는 남녀를 불문하고 돌봄의 감수성을 많이 갖고 있는 편이고 삶이 생존만을 위한 건 아니라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어요. 이 세대들이 뭔가를 해야 하는 거죠. 05학번 이후 세대들을 보면서 생각하는 건, 군대까지는 아니어도 여자·남자가 공익 근무를 다같이 하는 게 좋겠다는 겁니다. 단순히 군사적 측면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를 새로 재편해야 한다는 거예요. 공익 근무를 통해서 사회에 도움을 주는 인간이 되는 경험을 하게 하는 거죠. 예를 들어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에선 적은 숫자의 교사들이 저임금에 많은 아이들을 봐야 하니까 제대로 돌보지 못하잖아요. 그러나 육아는 적절히 나누면 굉장히 즐거운 일이거든요. 고된 노동을 즐거운 일이라는 개념으로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 이런 것들을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지식품앗이’ 강좌란

각 분야 전문가들이 무상으로 지식 제공

사회이슈부터 제빵까지 다양한 주제 강연



대학이 취업준비양성소가 되고, 돈으로 환원되는 지식만이 환영받는 시대. 지식인은 죽었고, 아카데미 속 지성도 죽었다. 그러나 아카데미 바깥에서는 배움에 목마른 이들이 아우성친다. 불황이라지만 사회 각 기관이 열고 있는 인문학 강좌가 환영받고 있고, 수강생들 또한 백수에서 주부, 직장인까지 다양한 배경을 가진 이들이 모여들고 있다.



바야흐로 대중지성의 시대가 온 것이다. ‘열하일기’ 전도사에서 <호모 쿵푸스> 등을 펴내며 공부 전도사로 나선 ‘수유+너머’ 고미숙 연구원은 “불황도 불황이지만, 멋진 삶에 대해 사회가 제시한 기획의 빈곤함이 드러나면서 사람들이 성공에 대해 무의식적으로 회의하는 것 같다”며 “이런 회의, 공허함을 채울 수 있는 것은 스스로의 충만감인데, 이는 공부와 분리해서는 얻을 수 없는 것”이라고 최근의 대중지성 강좌, 인문학 열풍의 이유를 분석했다.



이러한 대중지성의 시대는 특정 전문가에 의한 일방적인 지식의 전파가 아니라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자신의 지식을 풀어놓는다는 데 그 특징이 있다. 이름하여 지식품앗이다. 여태껏 특권화·세분화되어 있던 지식들이 서로 어우러지면서 사유의 폭이 확장되고 자유로워진다. 연세대 조한혜정 교수가 경제학자 우석훈씨와 함께 기획한 경제인류학 콜로키움(club.filltong.net/economicanthropology)이 지식품앗이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강좌는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내에 정규 강의과목으로 개설됐는데, 그 중 수요 강의를 일반인에게 공개하는 방식으로 운영되고 있다. 강좌를 기획한 두 학자를 비롯해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 최재천 이화여대 교수, 강수돌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 김성례 서강대 교수, 오명석 서울대 교수 등 경제학, 생물학, 종교학, 사회학 등 다양한 학문적 배경을 가진 이들이 강사로 나섰다. 수강생은 강의를 신청한 연세대 학부생 100여명 외에 관심있는 일반인들도 동참한다.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강사들의 경우, 수강생이 좀더 몰린다. 지난 4월 열린 장하준 교수의 강의에는 500여명이 몰려들어 성황을 이뤘다.



서울 서교동에 자리한 ‘다중지성의 정원’(www.daziwon.net)도 현 사회의 첨예한 이슈를 깊이 있게 살펴보는 지식품앗이 강좌를 분기별로 마련하고 있다. 올 봄에는 ‘88만원세대, 불안정노동, 그리고 인지자본주의’ ‘삶정치: 새로운 삶의 생성’ ‘국가, 안보 그리고 병역거부’ 등의 기획강좌에는 5~6명 이상의 학자가 강사로 나섰다.



지식품앗이는 텍스트에 한정되지 않는다. 다양한 소재가 그 대상이 된다. 생태, 경제, 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주제강좌를 열고 있는 서울 망원동 민중의집(www.jinbohouse.net)이 운영하는 회원공모강좌가 그 예이다. 강의당 1000원이라는 저렴한 강의료로 진행되는데, 회원 혹은 관심있는 이들이 기획한 강의 프로그램 중 선별해 개설한다. 현재 진행 중인 회원공모강좌는 고전문학을 공부하고 출판사에서 일하는 회원이 강사로 나선 ‘논어강독’과 한국독립영화협회 회원이 기획한 영화감상 및 토론강좌인 ‘쪽방극장’이 있다. 민중의집 사무국장 안성민씨는 “의외로 시민들의 호응이 좋다”며 “시민강좌는 강사를 섭외하고 프로그램을 짜는 데 품이 많이 들어서, 앞으로는 회원공모강좌를 늘려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사회의 대중지성 담론을 선도해 온 연구공간 ‘수유+너머’(www.transs.pe.kr)에도 지식품앗이 바람이 거세다. 이미 세미나와 강좌 등을 통해 ‘머리 쓰는 공부’뿐 아니라 요가와 제빵 등 ‘몸으로 하는 공부’도 수유+너머의 자장 안으로 들어왔다. 공부는 단순히 머리로만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요가, 제빵, 영화만들기 등 다양한 동아리 활동이 펼쳐지고 있으며 아예 이달 20일부터 시작되는 ‘청년 백수를 위한 케포이필리아’에는 강의와 더불어 동아리활동을 의무적으로 넣었다. 특정 분야의 지식과 경험을 가진 이들이 문외한인 이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가르친다는 데서 이 역시 일상적 차원의 지식품앗이로 볼 수 있다.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호모 쿵푸스> 등을 펴낸 고미숙 연구원은 “돈이 많아야만 어려운 이들을 돕는 게 아니듯, 지식도 특권화가 되지 않으면 누구든 나눌 수 있다고 본다”며 “현재 수유+너머에서도 많은 20대 연구원들이 강의를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본 전제는 텍스트든 무엇이든 무언가 나눌 게 있어야 한다는 것이겠죠? 세상에서 뭔가를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가르치는 겁니다. 누군가에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하면 매순간 공부가 잘 돼요. 나누는 것보다 더 큰 배움이 있을까 싶어요.”



<윤민용기자>



<글 최희진·사진 김기남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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