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봤어요? 우리 우승했어요!"
"그래? 나 방금 영국에서 돌아왔어."
평소 같으면 PSV 우승에 나 못지않게 기뻐하며 소리쳤을 이 사장님의 목소리가 어딘지 이상했다.
가늘게 떨리는 음성, 직감적으로 '뭔가 큰일이 생겼구나'하는 느낌이 왔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이 사장은 흥분을 억누르는 듯 긴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지성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다! 맨유에서 오란다. 조건도 아주 좋아. 알렉슨 퍼거슨 감독을
직접 만나 이야기하고 오는 길인데 벌써 너에 대해 훤히 알더라. "
순간 내 귀를 의심했다. 이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니!
믿어지지 않았다. 축구를 시작한 뒤 어떤 팀에 꼭 가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
다만 지금 서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언젠가는 내 실력을 맘껏 펼쳐 보일 수 있는
기회가 오리라는 믿음은 있었다. 그 믿음이 축구를 하는 동안 너무나 어려웠던 환경에
처한 나를 일으켜 세워주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믿음이 현실이 되어 나타날지는 정말 꿈에도 몰랐다.
그런데 세계 최고 축구 클럽 가운데 하나인 영국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영입 제의가 온 것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라구?? '맨유에 누가 있더라. 그렇지....
반니스텔루이가 있구나. 스콜스, 긱스, 리오.... 그리고 솔사르..."
머리 속이 백지장처럼 하얘졌다. 6 년전 처음으로 올림픽 대표팀에 뽑혔다는 소식을 전화로
들었을 때와 똑같았다. 주위가 온통 하얀 안개로 뒤덮인 것 같았고, 그저 멍한 느낌뿐이다.
대학교의 입학조차 불투명해서 늘 노심초사하시던 아버지.
늘 작고 왜소한 체격 때문에 '밥벌어 먹고 사는 것'조차 걱정하시던 어머니.
맨유라니...!!!! 그리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해주신 히딩크 감독님...
그 후...
이 사장으로부터 퍼거슨 감독님이 나에게 직접 전화를 반드시 해달라는 메세지를 들었다.
"지성? 나 퍼거슨이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 나는 너를 정말로 원하고 있다.
...네가 우리 팀에 와서 잘할 수 있으리라고 믿는다. 너는 정말 뛰어난 축구 선수다.
좋은 기회니까 놓치지 말기 바란다. 궁금한 것이 있으면 언제, 어느 때든 이 번호로 전화해라."
퍼거슨 감독은 내가 못 알아들을까봐 쉬운 단어를 골라 또박 또박 끊어가며 말했다.
그리고 굉장히 다정한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듣고 있으니 내가 벌써 맨유의 정식 멤버가 된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내게 잘해주셨다.
................. 중 략..................
맨유에 첫발을 디뎠을 때 한국 팬들이 스콜스와 나의 관계에 대해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사실 우리 가족과 매니저 사이에서 최대 관심 인물은 웨인 루니였다.
엄청난 재능을 지닌 영국의 대스타인 루니는 성격 또한 불같기로 유명했다.
평소에 조용한 성격인 내가 좌충우돌 스타일의 루니와 어떤 관계를 맺을지 가족들은
걱정 반, 기대 반이었던 모양이다.
나와 루니는 우연한 기회에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맨유에 입단한 후, 2 개월쯤 지났을 무렵, 훈련을 끝내고 주차장으로 향하는 내게
루니가 윔슬러 쪽에 볼일이 있다며 차를 태워 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흔쾌히 승낙했다. 루니뿐만 아니라 어떤 동료들과도 친하게 지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으니까.
루니와 30 분 정도 드라이브를 하면서 짧은 영어로나마 여러가지 대화를 나누었다.
팀에 관한 이야기부터 루니와 함께 영국에서 스타인 여자친구 콜린에 대해서까지.
"여자친구 콜린과는 언제 결혼할거야?"
내 질문에 루니는 얼굴까지 살짝 붉히며 아직 잘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혹시나 내가 자신들의 관계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는 지
서둘러 이유를 덧붙였다.
"콜린은 나에게 매우 소중하지만, 아직 우리는 둘 다 어려서..."
이렇게 마음을 한번 터놓고 나면 벽을 하나 허문 것처럼 가깝게 느껴졌다. 그 뒤로 루니와는
왜인지 잘 통하는 느낌이다.
특히 루니와는 그라운드 위에서 호흡이 척척 잘 맞았다. '이 타이밍이면 루니가 틀림없이
뛰어들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고개를 돌리면 어김없이 루니가 수비수를 제치고 비호처럼
뛰어 들어왔다.

경기장 안에서 궁합이 잘 맞는 동료를 두는 것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지는 축구를 해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동료와 생각의 호흡을 맞추기란 육체적 호흡을 맞추기보다 두세배
이상 힘들기 때문이다.
취근 들어 루니도 나와의 팀워크에 신경을 많이 쓰는 눈치다. 수비전환이 급하지 않은 경우
패스가 잘 안 맞는다고 생각되면...
나에게 다가와 '아까 스루패스는 좋았는 데 내가 타이밍을 잘못 맞췄다.'거나...
'다음에는 2 대 1 패스로 한번 해보자.'면서 자기 나름대로 해법을 내놓기도 한다.
이것 역시 기분 좋은 일이다. 나라는 존재가 동료에게 중요하다는 반증이니까.
한국에서는 나의 포지션 경쟁 상대라고 미움을 받는 크리스티아누 호나우도도
서로 장난을 치며 어울리는 친구 사이다.
포르투칼 출신인 호나우도는 라틴계 특유의 유쾌함이 뼛속까지 박혀 있어 잠시
훈련을 쉴 때면 나에게 다가와 어깨에 손을 언고 슬슬 농담을 하기 시작한다.
가끔 눈부시도록 화려한 개인기를 이용해 공으로 장난을 걸 때면 개구쟁이 소년 같다.
최근에 그는 포르투칼 리그에 진출한 김동현 이야기를 화제에 올리며 '좋은 팀에
갔던데 그 선수 어떠냐?" 라고 물어 나를 깜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맨유에 입단할 당시 한국 팬들로부터 가장 백안시 되었던 스콜스는
예상과 달리 더없이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다. 게다가 언제나 내게
먼저 안부를 물어오는 좋은 선배이기도 하다. 경기장에서는 무서운 표범처럼
굴지만 그라운드를 나서면 조용한 영국 신사로 돌아오는 사람이 바로 스콜스다.
화려한 머리 모양이 눈길을 끄는 리오 페르디난드 역시 쾌활하기 그지 없다.
팀 내에서 제일 목소리가 우렁차고 웃음소리 역시 가장 큰 친구가 리오다.
그라운드에서 만나면 눈을 부라리며 자기를 향해 달려드는 공격수를 잡아 먹을 듯한
표정을 짓지만 동료들끼리 있는 자리에서는 말 그대로 분위기 메이커다.
맨유의 선수들과 함께 지내다 보면 독특한 구석을 발견하게 된다.
세계 최고 클럽이라는 자부심이 있는 만큼 '우리 팀에 온 선수라면 누구나 세계적인 선수'
라고 인정하는 분위기가 그것이다.

1) 오늘은 3 대 1 전술 훈련을 했다. 내가 패스를 하고 옆으로 돌아나가
다시 패스를 해야 하는 데 제대로 못해서 감독님께 지적 받았다.
내가 요즘 너무 정신을 못차리는 것 같다.
2) 엄마가 주신 밥을 골고루 먹어 덩치가 커지고 키도 커져서
축구를 더욱더 잘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중학교는 물론 고등학교, 대학교, 국가대표까지 갈 것이다.

승마에서 쓰는 날렵한 준마를 판단하는 가장 중요한 기준 가운데 하나는
‘가는’ 발목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박지성의 발은 축구선수의 발은 아니라고
박 선수의 아버지는 말합니다.
국가대표로 뽑히기 전까지 스스로도 몰랐다는 평발인데다가 발목도 맨체스터에서
함께 뛰는 반 니스텔 루이, 웨인 루니같은 선수보다 훨씬 두껍다고 하더군요.
그런 불리한 신체조건을 극복한 것은 오직 피나는 훈련 노력 덕분이었을 겁니다.
그것은 90분 내내 지칠 줄 모르는 심장도 마찬가지 입니다. 흉터와 굳은살 투성이가
된 발과 대조되는 여성스러운 그의 길다란 손가락들을 보면서 참 많은 것을 느꼈던
순간이었습니다.
< 박지성 자서전 '멈추지 않는 도전' 에서 발췌....(다음 해외축구 토론방에서 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