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다 같이 저녁 먹으러 나가자.” 모처럼 아빠가 한턱을 낸다는데 아이들은 시큰둥하다. “엄마, 아빠만 다녀오세요. 우리는 친구들 불러서 놀다가 그냥 집에서 라면 먹을래요.”
아이들이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하면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든다. 이때부터 아이들의 생활에 점차 친구가 중요해져서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아이들은 부모를 따라 다니기보다는 자기들끼리 어울리기를 더 즐기게 된다.
아이들의 생활에서 친구가 중요해지는 만큼 친구 때문에 힘들어하는 일도 많아진다. 특히 학교나 유치원에서 또래들에게 놀림을 당하거나 괴롭힘을 당했을 때 아이들은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느낀다. 이런 경우 안타까운 마음에 부모가 아이들 대신 나서서 친구들을 만나거나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은 때도 있다. 아니면 그런 친구들이 없는 다른 유치원을 찾아볼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친구를 만날 때마다 유치원을 옮길 수는 없는 일이다. 그렇다고 친구 때문에 속상해하지 말고 집에서 엄마와 함께 지내자고 무시할 수도 없다. 왜냐면 아이를 위해 부모와 친구가 해 줄 몫이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미국의 저명한 심리학자 할로 박사는 원숭이 연구를 통해 엄마와 친구의 역할을 비교해 보았다. 한 집단의 원숭이는 ‘엄마하고만’ 생활하도록 하고 친구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았다. 다른 집단의 원숭이는 반대로 ‘친구들하고만’ 생활하고 엄마와 접촉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 결과 두 집단의 원숭이들 모두 정상적으로 발달하지 못했다. 엄마하고만 생활했던 원숭이들은 친구들을 피했고 친구들이 접근했을 때도 매우 공격적이었다. 장기간 친구들과 접촉하지 못한 경우에는 이러한 행동들이 어른 원숭이가 되어서까지 지속되었다.
반대로 친구들하고만 자란 원숭이들은 친구들끼리 꼭 달라붙고 강한 유대감을 형성했다. 그러나 주변을 탐색하거나 흥미로운 놀이를 하려고 할 때조차 서로 달라붙고 끌어안아서 아무 것도 할 수 없었다. 적은 스트레스나 위협에도 매우 불안해했다.
할로의 연구결과는 부모는 아이에게 정서적인 안정감을 제공하고, 친구들은 상호적인 사회성을 길러준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직 상호적 관계에 익숙하지 않은 아이들은 친구들과 싸우고 다투는 과정 속에서 상호적 관계의 법칙들을 배워 나간다. 따라서 아이가 친구들과의 문제로 힘들어할 때 부모가 그 고민을 대신 나서서 해결해 줄 경우 아이는 영원히 친구 관계 속에서 중요한 문제들을 푸는 방법을 배우지 못할 것이다. 그보다 아이가 놀림이나 괴롭힘에 스스로 대처할 수 있도록 방법을 가르쳐주어야 한다. 다음의 방법들을 아이 스스로 실천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첫째, 무시한다. 놀림이나 괴롭힘을 당했을 때 화를 내거나 울면 더 놀림을 당하기 쉬우므로 때로는 무시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둘째, 표현한다. 무시하는 방법으로 해결되지 않을 때는 어떤 방법으로든 대응을 한다. “하지마. 난 네가 내 별명을 부를 때마다 기분이 나빠. 이제 그만 했으면 좋겠어”라고 상대방이 어떻게 했으면 좋을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또는 놀리는 내용을 사실로 인정한다. 아이들이 ‘왕눈이’라고 놀리면, “그래, 내 눈은 정말 커”라고 대답한다. 이때는 상대방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고 당당하게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나 이 방법은 통제된 상황에서는 효과적이지만 놀리는 아이와 단둘이 있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더 심하게 놀리거나 괴롭힐 수도 있으므로 그때의 상황을 봐가며 적용한다.
셋째, 도움을 요청한다. 놀림이나 괴롭힘이 지속되거나 폭력을 동반하게 될 경우는 어른의 도움을 요청한다. 아이 혼자 걱정하다 보면 극단적인 생각으로 치닫기 쉽다. 폭력이 동반되거나 혼자서 힘들다고 생각되는 순간에는 꼭 부모에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평소에 잘 일러두고 무엇보다도 아이의 변화를 민감하게 알아낼 수 있어야 한다.
〈 장유경 | 한솔교육문화연구원장 〉 2008년 04월 14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