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김대성 별의별 교육연구소장·상인천초등학교 교감
“선생님, 이 책 요약해 주시면 안 돼요?”
교실에서 학생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책 한 권을 읽는 시간보다 요약본을 찾는 시간이 더 익숙한 시대다. 궁금한 것은 생성형 AI에 물으면 몇 초 만에 답을 얻는다. 정보는 넘쳐나지만 끝까지 읽고, 스스로 생각하며, 다른 사람과 토론하는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AI가 발전할수록 독서의 중요성은 줄어들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다. AI가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정보의 검색과 요약이지, 의미를 이해하고 맥락을 연결하며 스스로 판단하는 일은 아니다. 오히려 AI 시대일수록 독서는 인간만의 사고력을 키우는 가장 중요한 교육이 되고 있다.
우리는 그동안 아이들에게 “책을 많이 읽어라”라고 말해 왔다. 그러나 정작 책을 읽을 시간은 충분히 보장하지 못했다. 학교는 교육과정과 평가로 촘촘했고, 방과 후에는 학원과 과제가 이어졌다. 독서를 중요하다고 말하면서도 교육은 빠른 성취와 정답을 먼저 요구했다. 아이들이 깊이 읽고 오래 생각하는 경험보다 문제를 빨리 해결하는 방법에 익숙해진 이유다.
숏폼 콘텐츠와 AI는 이러한 변화를 더욱 가속했다. 짧고 강한 자극에 익숙해질수록 긴 글을 읽으며 생각을 이어가는 일은 어려워질 수 있다. 하지만 독서는 본래 느린 활동이다. 한 문장을 읽고 멈춰 생각하고, 앞에서 읽은 내용과 연결하며 의미를 스스로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독서는 단순히 지식을 얻는 일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일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1세기 독자'(2021) 보고서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나라 학생들은 읽기 성취도는 높았지만, 글 속에서 사실과 의견을 구분하는 문항에서는 OECD 평균보다 낮은 결과를 보였다. 정보를 비판적으로 읽고 해석하는 힘이 부족하다는 의미다. 오늘날 문해력은 글을 읽는 능력을 넘어 넘쳐나는 정보 속에서 근거를 확인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비교하며, 스스로 판단하는 능력까지 포함한다.
그래서 독서는 국어 공부만을 위한 활동이 아니다. 모든 배움의 출발점이며, AI 시대를 살아가는 시민의 기본 역량을 기르는 교육이다. AI는 책의 내용을 요약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요약은 이해가 아니고, 정보가 곧 지혜도 아니다. 무엇이 사실인지, 어떤 주장에 동의할지, 서로 다른 관점을 어떻게 연결하고 판단할지는 결국 사람의 몫이다.
그렇다고 AI를 독서의 경쟁 상대로 볼 필요는 없다. AI는 학생 수준에 맞는 책을 추천하고, 어려운 개념을 설명하며, 토론 질문을 만들어 주는 훌륭한 학습 도구가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AI를 독서를 대신하는 기술이 아니라 독서를 더 깊게 만드는 도구로 활용하는 일이다.
학교는 읽을 기회를 만들어야 하고, 지역사회는 도서관을 단순히 책을 빌리는 공간이 아니라 토론하고 배우는 공간으로 발전시켜야 한다. 가정에서는 “오늘 무엇을 배웠니?”보다 “오늘 어떤 생각이 들었니?”, “가장 인상 깊었던 문장은 무엇이었니?”라고 묻는 대화가 늘어나야 한다.
독서는 혼자 책장을 넘기는 시간이 아니라 생각을 나누는 문화가 될 때 비로소 힘을 갖는다.
AI는 앞으로 더 많은 답을 알려 줄 것이다. 그러나 더 좋은 질문을 만들고, 서로 다른 생각을 연결하며, 타인의 삶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힘은 여전히 사람만이 기를 수 있다. 그 힘은 오래전부터 변하지 않았다. 한 권의 책을 끝까지 읽고, 천천히 생각하고, 함께 이야기하는 경험 속에서 자란다.
AI 시대에 독서가 다시 중요한 이유는 책 속에 답이 있어서가 아니라, 스스로 답을 찾는 사람을 길러내기 때문이다.
© 인천일보. 김대성 별의별 교육연구소장·상인천초등학교 교감. 2026. 07. 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