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 도서관은 도시의 서재…글 쓰는 사람은 제 집처럼 들락거려야 | |||
|---|---|---|---|
| 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26-05-29 | hit : 19 | ||
“당신 누구냐, 왜 왔느냐” 묻지 않는 관용의 공간이자 집필 최적지 읽는 곳과 쓰는 곳 구분하는 건 난센스…모든 지적 활동 존중 마땅 핀란드 독립 100주년 맞아 기념탑 대신 도서관 건립한 이유는?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공간은 카페다. 음악이 흐르는 창가 자리에 음료를 놓고 자판 두드리는 모습이 익숙하다. 그러나 카페는 원래 노닥거리는 곳이다. 옆자리에서 떠드는 사람들이 진짜 주인공이다. 자료를 늘어놓고 쓰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주 눈치가 보인다. 주변 환경에 시선이 흩어지면 생각도 흩어진다. 도서관의 미덕은 개방성이다. 카페를 이용하려면 돈을 내야 하고, 복지시설을 들어가려 해도 회원증을 보자고 한다. 공원의 벤치는 밤이면 떠나야 한다. 이에 비해 도서관은 늘 열려있다. 당신은 누구냐, 왜 왔느냐고 묻지 않으면서 밤늦도록 자리를 준다. 핸드폰을 봐도 뭐라 하지 않고, 졸아도 괜찮다(코만 골지 않으면-). 도서관의 관용은 오랜 전통이다.
증언이나 사례는 많다. ‘백범, 강산에 눕다’의 저자 임순만 작가는 최근 국민일보 인터뷰에서 서울 강서구 동네 도서관을 5년간 오가며 대작을 완성했다고 말했다. ‘러셀의 인생수업’을 쓴 성기철 작가도 일산의 법원도서관을 아지트처럼 이용했다고 한다. 초등학교를 품은 아파트(초품아)의 매력은 한시적이지만 도서관을 품는 아파트(도품아)의 가치는 길게 간다. 도서관은 사람의 성장을 돕는다. 빌 게이츠는 “내가 살던 마을의 작은 도서관이 오늘의 나를 만들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여기서 도서관은 책을 매개하는 곳이 아니라 호기심을 키우고 세상을 배우는 교실이다. 그가 성공한 뒤 저소득 지역 공공도서관에 컴퓨터와 인터넷 보급에 발을 벗고 나선 이유다. 미국에서는 도서관이 시민대학의 역할까지 맡는다. 미국 전역에 맥도널드 매장이 약 1만 3,700개인 데 비해 공공도서관은 1만 7,000곳에 이른다. 여기서 시민의 삶을 떠받치는 콘텐츠가 공급된다. 무료 강연, 영어 교육, 취업 지원, 디지털 교육, 어린이 프로그램 등 다양한 배움의 기회가 주어진다. 9.11 때는 치유 활동을 펼쳤고 코로나 기간에는 원격 프로그램으로 도시의 지적 안전망 역할을 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뉴욕 공공도서관의 일자리 프로그램을 통해 시카고 시민단체를 소개받았고 거기서 야망을 키웠다. 하와이 출생의 그가 시카고를 ‘정치적 고향’이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의 도서관 사랑은 각별해 어록을 남길 정도다다. “아이 한 명이라도 도서관 문턱을 넘도록 이끈다면 그 아이의 삶이 바뀝니다.” 뉴욕에 이사 가면 자유의 여신상이 환영 인사를 하고, 공공도서관이 오리엔테이션을 시켜, 진정한 뉴요커로 만든다는 말도 있다. 도서관 사랑은 미국의 자랑이다. 작년 10월에 ‘철강왕의 선물…美전역 도서관에 1만 불씩 수표’라는 기사가 떠서 해프닝인가 했더니 올해 1월부터 각 도서관이 진짜 수표를 받았다는 보도가 나왔다. 앤드루 카네기(1835~1919)가 설립한 카네기 재단이 독립 250주년을 기념해 그가 설립한 도서관 1,280여 곳에 후원금을 보낸 것이다. 거기에 달린 단서가 쿨하다. “돈을 어떻게 쓸지는 각 도서관에 맡긴다.”
우리도 도서관의 근사한 기억이 있다. 먼저 남산도서관 앞의 긴 줄이다. 1965년에 문을 연 남산도서관은 새벽부터 자리 잡기 경쟁이 펼쳐졌고 겨울에는 책가방을 놓아 순서를 정할 정도로 인기였다. 그런 사진을 보면 지금도 짠한 마음이 든다. 정독도서관의 탄생도 멋지다. 1976년 경기고가 강남으로 이전한 자리에 도서관이 문을 열었다. 그냥 읽는 게 아니라 바르게 읽자[正讀]는 이름을 달았다. 서울시청의 변신도 경이롭다. 2012년 신청사가 완공되자 1926년에 지어진 옛 건물은 서울도서관이 됐다. 지금 중앙계단 양쪽의 대리석 난간을 만져보면 오랜 역사의 질감을 느낄 수 있다. 남산-정독-서울도서관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지식을 대하는 공동체의 태도를 보여준다. ‘기적의 도서관’이 늘어난 것도 기적적이다. 전국의 어린이들을 위해 2003년 순천에서 출발한 이 도서관은 2026년 현재 18개소가 운영 중이고, 강원도 삼척에서 19호를 준비 중이라고 한다. 민간에서 주도하는 이 프로젝트는 철저히 아이들 눈높이에 맞춘다. 어린이가 신발 벗고 들어가 뒹굴고 숨어서 읽을 수 있도록 온돌바닥으로 설계했다. 시간이 흐르면 빌 게이츠처럼 이 도서관을 추억하는 사람이 많이 나오지 않겠나 싶다. 그러나 우리의 갈 길은 아직 멀다. 우선 도서관을 편의시설의 하나로 보는 시선이 딱하다. 그러나 독립건물이 아니라 복합건물의 일정 공간을 도서관으로 할애한다. 층고가 낮고 협소하다. 컴퓨터가 놓인 자리는 팔을 벌리기도 어렵고, 옷을 걸거나 가방 놓을 곳도 없다. 열람실에서 앞사람 얼굴이 너무 가까워 민망하다. 뉴욕도서관에 가면 넓은 오크 책상에 우아한 독서등(燈)이 놓여 있다. 시민들 지적 활동을 바라보는 공동체의 눈길이 부드럽다. 공무원이나 의원들이 외국에 나가면 이런 데를 좀 보고 오면 좋으련만. 읽는 공간과 쓰는 공간을 나누는 정책도 난센스다. 사서에게 물어보니 자판 치는 소리가 읽기를 방해한다는 민원 때문에 그랬다고 한다. 도서관을 독서실과 구분하지 못하는 사람의 의견을 반영하다니. 정 어렵다면 복합 존을 만들면 된다. 고금으로 읽고 쓰는 행위는 하나다. 더욱이 책 빌리는 곳, 공부하는 곳, 노는 곳의 칸막이가 사라지는 추세다. 이즈음 아르헨티나 국립도서관장을 지낸 작가 보르헤스의 헌사를 떠올린다. “I have always imagined that Paradise will be a kind of library 나는 늘 천국이 어떤 도서관의 모습일 것이라고 상상해 왔다.” 도서관을 인간 정신의 이상향으로 본 것이다. 사진가 로버트 도슨은 ‘공공도서관’(한스미디어)이라는 책에서 ‘문화 그 이상의 경이로움’으로 묘사했다. 제임스 캠벨이 엮은 ‘세계의 도서관’(사회평론)을 보노라면 “도서관이 있다는 자체가 인류의 미래에 희망이 있다는 증거”라는 T.S.엘리어트의 발언을 곱씹게 된다.
|
|||
| 링크 : https://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206166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