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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의 품격을 지닌 한옥 디자인의 서가- 전라남도 도립도서관
작성자 : 운영자 작성일 : 26-05-08 | hit : 74

남도 우정여행이선물한 뜻밖의 도서관



계획에 없던 선물들


사람의 계획이나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연이고, 그 인연으로 이루어온 우정과 사랑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20년 이상 직장 생활을 함께했던 후배들과의 관계를 '우정'이라 부르기는 쉽지 않다. 더군다나 내 산하에서 함께 일했던 후배들과 퇴임 후에도 이런 관계를 이어간다는 건 언감생심이다.


몇 해 전 직장을 떠나고 보니, 후배들에게 먼저 연락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일을 부탁하는 것도 아니고 밥 한 끼 하자는 것뿐인데, 웬지 그들에게 짐이 될까 봐 먼저 손을 내밀지 못했다. 그런데 감사하게도 몇몇 후배 그룹이 먼저 연락을 해왔다. 3년 전, 그중 한 그룹이 남도여행에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내 답은 간단했다. "Why not." 후배들이 불러주는 자리는 언제나 내겐 우선 순위에 있다.


그렇게 시작된 남도여행이 벌써 3년째다. 매년 4월 중순, 우리가 함께 근무했던 직장의 창립기념일에 맞춰 2박 3일 일정을 짠다. 한 달 전부터 카톡 방에서 숙소와 맛집을 공유하며 여행은 이미 시작된다. 목적지와 숙소, 식당을 찾아보며 마음속으로 거리를 걷고 공간을 누비는 그 시간만으로도 짜릿하다.


올해 목적지는 목포와 전주였다. 3년 전 여수·순천으로 시작된 우리의 남도여행은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돌아오는 길엔 전라북도를 거쳐왔다. 여행 날짜에 비 소식이 있었지만, "비가 오면 어떻고 눈이 오면 어떠랴. 함께 먹고 걷고 자는 시간만으로 충분하다"는 설렘을 안고 길을 나섰다.



목포근대역사관과 벚꽃. (사진=고규영)
목포근대역사관과 벚꽃. (사진=고규영)



백제의 빛, 비가 건넨 첫 번째 선물


새벽에 출발한 우리는 천안 근처에서 병천순대국으로 아침을 먹고 커피를 마시며 느긋한 여행을 시작했다. 비가 쏟아지자 원래 계획했던 오전 목포 유달산 케이블카 탑승과 하이킹은 포기하고, 어느 후배의 제안으로 국립부여박물관으로 방향을 틀었다.


마침 “백제금동대향로” 특별전이 열리고 있었다. 어두운 전시 공간에서 홀로 빛을 발하는 향로 앞에 섰다. 일본까지 전해진 백제인들의 예술미가 고스란히 담긴 이 작품은 서울 국립중앙박물관의 반가사유상에 비견할 만큼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600여 년간 절터 땅속에 묻혀 있었음에도 부식되거나 상하지 않았다는 것이 신비로웠다.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4면을 한참이나 넋을 잃고 감상했다.


비가 오지 않았다면 들르지 않았을 부여박물관. 계획하지도, 생각하지도 못했던 순간 찾아오는 선물 같은 만남이었다.


목포, 맛과 멋의 향연


비를 뚫고 목포로 향했다. 목포역 근처 낙지 전문 독천식당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낙지비빔밥, 낙지호롱이, 낙지연포탕으로 이어지는 맛의 향연. "아, 목포에 왔구나"를 실감케 했다.


비는 여전히 거세게 내렸고, 실내 공간인 목포근대역사관으로 발길을 옮겼다. 유달산 밑 언덕에 자리 잡은 붉은 벽돌 건물과 그 옆의 커다란 노송, 비에 떨어진 벚꽃이 깔린 마당은 마치 수채화처럼 아스라했다. 우산을 받쳐도 들이치는 빗줄기를 다 막을 수는 없었다.


3시에 숙소로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 한 곳을 더 가기로 했다. 내가 여행할 때마다 기회가 된다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그 지역의 도서관이다.



전라남도도립고서관 외관 솟을대문 디자인. (사진=고규영)
전라남도도립도서관 외관 솟을대문 디자인. (사진=고규영)



전통의 기단 위에 쌓은 현대의 지혜


숙소에서 멀지 않은 목포 바닷가 근처에 전라남도도립도서관이 있음을 확인했다. 10여 분 차를 몰고 가다 보니, 비를 맞으며 한글 자음 'ㅅ'을 머리 위에 얹은 듯한 한옥 솟을지붕과 현대식 건물이 조화를 이룬 도서관이 나무 너머로 아스라이 들어왔다. 도서관임을 직감했다.


차 창문을 열고 잠시 외관을 감상했다. 건물 상단에는 세종의 훈민정음 당시 옛 한글이 새겨져 있었다. 비를 피해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안내판을 보고 곧장 4층으로 가기 위해 엘리베이터를 탔다. 문이 열리는 순간, 함께 간 후배들의 입에서도 "와" 하는 감탄사가 터져 나왔다. 높은 층고의 널찍한 공간, 한옥 창틀 디자인의 기둥, 'ㅅ' 형태의 유리 통창이 앞으로 열리며 전통과 현대가 조화를 이룬 도서관 공간이 한눈에 들어왔다.


비 내리는 목포 바닷가 앞에 마주한 거대한 한옥 디자인의 지혜의 숲이었다.


안내문을 보니, 이 도서관은 한옥의 대표적 건축 문화인 기단을 모티브로 삼았다고 했다. 조선 시대부터 축조되기 시작해 우리나라 건축에서 가장 기본적인 구성 요소 중 하나인 기단. 삼국시대부터 시작한 그 전통을 현대 건축에 접목했다는 설명이었다. 정문을 솟을삼문(三門) 형태로 배치해 중앙 간의 지붕을 한 단 높게 꾸며 세간 대문의 위계와 환영의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송광사 하사당이 대표적인 예라고 한다.


또한 전라도의 풍부한 햇살을 담아내는 태양광 시스템을 지붕 디자인에 접목하여, 전통의 미학이 지속 가능한 미래 에너지와 공존하는 '친환경 도서관'의 표본을 제시하고자 하였다.



전남남도도립도서관 내부 디자인. (사진=고규영)
전남남도도립도서관 내부 디자인. (사진=고규영)



자유롭게 배치된 책상과 의자, 다양한 형태의 소파에 앉기도 하고 거의 눕기도 하며 편안한 자세로 책을 보고 쉬는 사람들이 구석구석을 채우고 있었다. 평일 오후, 비가 거세게 오는 날에도 이런 공간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이 목포사람들에겐 축복이란 생각이 들었다.


4층은 복합문화공간으로, 다양한 서고와 글을 쓰고 PC 작업을 할 수 있는 책상은 물론 누워서 쉴 수 있는 소파 공간과 카페가 한옥 공간 안에 자연스럽게 연결되어 있었다.


카페 입구 한쪽 벽에는 '전라남도 올해의 책'이라는 책 큐레이션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경제 전문서부터 소설, 어린이 책까지 20여 종의 다양한 책이 전시되어 있었고, 그중 "인구소멸과 로컬리즘"이라는 책도 눈에 띄었다. 인구 20만 붕괴를 걱정하는 목포시 역시 지방도시로서의 위기감을 느끼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알 수 있었다.


4층부터 한 층씩 내려오며 3층 문학자료실과 디지털존, 1층 어린이 도서관과 남도자료실까지 둘러보았다. 각 층을 거닐며 본 안내문에는 남도 대표 작가들의 책이 기둥처럼 전시된 외관 디자인도 소개되어 있었다. 박완서, 현영만, 정채봉, 문순태, 조태일, 매천 황현, 송수권, 조정래, 문병란, 이청준, 김영랑, 조의, 이수복, 임철우, 곽의진, 김삼웅, 유홍준, 정약용, 윤선도 등 남도가 낳은 문학과 예술, 역사의 거장들이 책 속에 담겨 건물 외벽을 장식하고 있었다.


서가에서 몇 권의 책을 골라 창가 소파에 앉았다. 비 내리는 바닷가 주변 풍광을 바라보며 새벽부터 달려온 남도여행의 호흡을 고를 수 있었다. 잠시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감고 휴식을 취하며 책을 펼쳤다.



바다가 보이는  도서관 창가  자리. (사진=고규영)
바다가 보이는  도서관 창가  자리. (사진=고규영)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비가 오지 않았다면 들르지 않았을, 비와 남도 우정여행이 준 선물 같은 축복의 시간을 목포 바닷가 전라남도도립도서관에서 누리며 서서히 어두워지는 남도여행 첫날 저녁을 맞이했다.


이번 남도여행의 시작은 비로 인해 오히려 축복받은 느낌이었다. 살면서 우리 계획대로, 뜻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다. 오늘 남도여행에서 비가 준 선물처럼, 우리 삶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너무 억지 부리며 내 계획을 고집하기보단 하늘의 뜻을 받아들이고, 하늘이 주는 선물 같은 시간과 공간과 사람이 내게 오길 담담히 기다리며 살 수 있다면 좋겠다. 그리고 그 옆에 이번 남도여행에서와 같이 빗속에서라도 나와 함께 우정을 나눌 벗이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그것이 삶의 축복 아니겠는가?


고규영은 글로벌 마케팅전략 컨설턴트다. LG전자, LG필립스-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에서 마케팅 임원으로 일했다. 지난 30년간 B2B와 B2C 시장을 아우르며 시장, 고객, 회사의 마케팅 전략 수립과, 글로벌 영화사, 유명아티스트, 메가인플루언서, 글로벌 유통 등과의 마케팅 협업을 해왔다. 기업 퇴임후엔 전문직 공무원으로 봉직하며 기업 홍보경험을 정부기관에 접목하는 시도를 했다. 현재는 기업 및 공공기관 대상으로 마케팅과 AI 관련 강의를 하며, 뉴스버스 객원기자로도 활동 하고 있다. 공저로 <인생후반전, AI와 동행>  가 있다.


© 뉴스버스. 고규영 마케팅전략 컨설턴트. 2026.05.08.


링크 : https://www.newsverse.kr/news/articleView.html?idxno=10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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