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 게시판
| 미술관 속 영화관, 공적 경험을 선사합니다 [.tx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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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25-03-31 | hit : 95 | ||
상영작 조사부터 출판물 제작까지 실무 담당 특정 성별·나라에 치우치지 않도록 작품 안배 ‘예술의 공공성’ 위해 일한다는 자부심 있지만 무기계약직 낮은 처우에 인력 부족 시달려
일하는 사람의 초상 l 국립현대미술관 내 영화관에서 일하는 학예원, 제이 우리는 일을 해서 돈을 벌고, 타인과 관계를 맺으며, 보람도 얻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일 이야기를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가들이 만나 듣고 글로 전합니다. 날마다 일하러 가는 장소를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까. 애사심이 아니라 일터에 대한 사랑을 묻는 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MMCA)은 나에게 그에 관한 상상을 촉발시키는 곳이다. 넓고 조용하고 깨끗한 공간, 일방향의 동선을 그리며 천천히 걷는 관객들, 통창 너머의 아름다운 중정. 어느새 내 눈길은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에게로 향했다. 특히 여느 미술관과 다르게 영화관이 갖추어져 있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은 일하는 공간에 대한 가상의 애정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매혹적인 장소다. 지난 화요일 오후, 미술관 내 영상관(MMCA필름앤비디오)에서 일하는 학예원 제이(J, 가명)를 만나 궁금한 것을 물었다. 그는 2019년부터 만으로 6년 동안 그곳에서 일했다. “필름앤비디오 학예원은 전시과 소속이에요. 영화제로 치자면 프로그램팀의 코디네이터와 비슷한 일을 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상영작 조사부터 출판물 제작까지 영화 상영과 관련된 전반적인 실무를 담당하고 있어요. 미술관 직원이라고 밝히면 대개 공무원이라고 생각하시는데, 저는 무기계약직인 ‘공무직’이에요. 공무직은 호봉제가 아니라서 수십년을 일하더라도 직급이 오르지 않고, 기본급으로는 최저 시급을 받을 뿐이죠.” 한바탕 자조적인 웃음을 터뜨리며 진행된 인터뷰는 시작부터 진솔했다. 제이는 원래 영화를 연출했으나 진로를 변경해 미술관으로 오게 되었다. 미술관 전시과 내에는 엠엠시에이필름앤비디오와 다원예술이라는 특수한 프로그램이 있다. 학예연구사가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예산을 짜고 계약과 행정 업무 등을 총괄한다면, 학예원은 해당 프로그램의 실무적인 진행을 나눠 맡는다. 아마도 미술관 안에 영화관이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 역시 이 공간을 안 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이곳만의 장점이 뭔지 궁금했다. “우선 영화관의 관람 환경이 아주 훌륭해요. 굉장히 실력 있는 영사 기사님이 계시거든요. 작은 디테일 하나하나를 최적의 상태에서 관람할 수 있도록 만들어주셔요. 이를테면 요즘 영화관이 거의 하지 않는 ‘마스킹’을 들 수 있겠지요. 마스킹이란 개별 영화의 화면비에 맞춰 스크린 비율을 조정하는 거예요. 스크린의 양 사이드를 조절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아날로그적인 방식으로 매번 검은색 커튼을 정확한 위치에 놓아두어야 해요. 커튼 맨 아래쪽에는 납으로 된 추가 있어서 그 무게로 커튼을 고정시키는데, 저는 종종 그 사실을 잊어먹는 바람에 행사용 물건을 옮기다가 추에 머리를 여러번 부딪히기도 했어요. 참고로 굉장히 아픕니다. 그리고 객석의 단차가 높아서 앞좌석 관객의 앉은키와 상관없이 쾌적하게 관람할 수 있어요.”
실제로 영화관 내부를 촬영하기 위해 계단을 여러번 오르내렸는데 다른 극장에 비해 계단이 꽤 높았다. ‘마스킹’을 비롯해 단차에 이르기까지 오롯이 작품 감상에만 초점이 맞춰진 공간이었다. 제이에게 그 공간의 의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영화계에서는 영화를 기본적으로 산업적인 측면에서 바라보는 관점이 있어요. 작품을 대할 때 상업영화든 독립영화든 간에 일종의 ‘상품’으로서 영화를 대하거든요. 그래서 영화제에서 작품을 출품받을 때도 재작년도에 제한을 걸어두죠. 기본적으로 영화에 유통기한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요. 하지만 만약 그해에 발견되지 못한 좋은 작품이 있다면요? 몇년 후, 수십년 후에야 제대로 진가를 발휘하는 작품도 분명 존재하니까요. 그런 측면에서 미술계가 작품을 바라보는 방식이 제게는 새롭게 다가왔어요. 작품 하나하나의 개별적인 가치를 따지는 게 아니라 작가가 인생에 걸쳐 만들어가는 궤적을 통해 작품을 바라봐요. 한마디로 예술로서 작품을 대한다는 것이죠. 최신작이 아니라 하더라도 언제든 작품에서 동시대적인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요.” 일반 영화관에 걸리기에는 수익성이 부족하지만 다양한 예술을 만나보는 의미에서 좋은 작품을 볼 수 있는 곳이 많지 않은 건 사실이다. 제이는 관객들이 영화와 만나는 방식이 좀 더 다양하게 마련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공공미술관에 자리한 영화관은 상업적인 실적에 상관없이 비교적 긴 기간 의미 있는 상영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관객과 접촉면을 늘릴 수 있는 효과를 만들 수 있다면서. 문득 그곳에서 관람했던 차학경의 작품들이 떠올랐다. 입구 앞에 길게 줄 선 관객을 보면서 그런 수요가 많다는 것에 놀란 날이었다. 차학경의 작품을 선정하게 된 과정이 궁금했다. “차학경을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캐시 박 홍의 ‘마이너 필링스’를 읽으면서 작가의 죽음에 대해서 다시금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책을 읽었던 시기가 마침 작가 리서치(조사)를 하던 기간과 겹쳐서 학예연구사님께 추천해드렸고, 시간표를 짤 때도 차학경의 기일에 상영일을 맞추고 싶어서 개인적으로 신경을 좀 썼어요. 그해가 돌아가신 지 40주기가 되는 해여서 더 뜻깊었다고 생각합니다.” 상영하기 전에 미리 검토하는 과정을 당연히 거치겠지만 아무래도 영화관에서 작품을 다시 보면 남다른 감정을 느낄 듯싶었다. “작품을 검토하는 과정에서는 ‘스크리너’라 부르는 영상 링크를 받아 사무실에서 작은 노트북 화면으로 영화를 봐요. 그런데 같은 작품이라 하더라도 영화관에서 다시 보면 훨씬 더 좋게 느껴져요. 큰 화면과 풍부한 사운드 시스템으로 압도되는 느낌이 있지요. 어두운 공간 안에서 높은 집중력으로 시간을 공유하는 느낌은 언제나 특별하게 다가오고요. 오티티(OTT) 등이 보편화되면서 개인적인 공간에서 영화를 보는 것이 일반화되고 있지만 저는 여전히 공적인 경험으로서의 영화 보기가 갖는 힘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영화 관람이 개인화될수록 극장이라는 환경에서 타인과 함께 영화를 ‘경험’하는 것이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것 같아요.” 극장 관객 수가 많이 줄어든 현실을 떠올리자 그 말이 묵직하게 다가왔다. 공적 경험의 영역이 점점 줄어들고 있지만 그런 상황을 바꿔야 한다는 목소리는 크지 않다. 문득 제이가 일하는 곳이 공공 기관이라는 게 떠올랐다. 마음가짐부터 다른 게 있지 않을까. “처음부터 그러지는 않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공공 기관에서 일한다는 것을 잊지 않으려 해요. 프로그램을 준비할 때도 의식적으로 작가군이 다양하게 구성되도록 학예연구사님과 의논을 하죠. 작가나 작품이 특정 성별이나 국가에 치중되지 않도록 안배하는 것도 당연하게 여기게 되었고요. 관람객들이 줄 서서 보려는 유명 작가의 인기 있는 프로그램 하나를 만드는 것도 의미 있겠지만, 소수자의 시선을 반영하고 예술 생태계를 더 풍성하게 만들 수 있는 뜻깊은 작품을 더 많이 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제이가 생각하는 공공성엔 공정과 다양성이 포함되어 있었다. 두 가지 모두 우리 사회의 큰 화두이기도 하다는 점에서 그곳의 방향성에만 국한된 말로 들리지 않았다.
“관객으로서 이 공간을 좋아했기 때문에 계속 누군가가 좋아할 수 있는 공간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어요. 리플릿이나 포스터 등의 홍보물을 만드는 일도 저의 주된 일인데 그것들은 미술관에서 만들어지는 다른 출판물과 마찬가지로 아카이브에 영구 보관되거든요. 기록으로 남는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일해요. 먼 미래에 누군가가 참고할 수 있는 자료가 되는 것이니까요. 실제로 미술관 아카이브에서는 과거 전시 및 프로그램의 포스터로 새로운 전시를 기획하기도 하고요. 공동체 안에서의 의미와 방향성, 다음 세대로 이어지는 흐름에 대한 고민 등은 미술관에서 일할 때 자연스럽게 고려하게 되는 문제 같습니다. 이야기가 거창해지는 것 같은데 수백명의 직원 중 한 사람으로 일하고 있지만 작게나마 공적인 영역에 기여하고 있다는 사실이 현실적인 어려움과 상관없이 만족감을 주는 측면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만족감이 결코 금전적인 보상에만 있지 않음을 깨닫게 하는 말이었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에 대해 물었다. “엠엠시에이필름앤비디오가 생긴 지 이제 10년 정도가 되었는데요, 초창기부터 인력 부족 문제가 대두되었어요.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학예연구사가 한명, 학예연구사를 보조하는 학예원이 한명, 그리고 영사 기사, 이렇게 셋이 전부니까요. 영화관의 연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실행하기에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게다가 올해부터는 전담 학예연구사 체제가 아닌 전시과 소속의 여러 학예연구사가 일년씩 돌아가면서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것으로 방침이 변경되었어요. 필름앤비디오의 특수성과 전문성, 지속성을 간과한 결정인 듯하여 조금 우려가 됩니다. 지금으로서는 아무래도 외부 기관과의 협력이 불가피할 것 같은데 오히려 다양한 배경을 가진 기획자들이 프로그래밍에 참여할 수 있다면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도 있겠죠. 다가오는 여름에는 서울국제실험영화페스티벌과 함께 로버트 비버스의 작품 상영을 계획하고 있어요.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비버스의 작품은 디지털화되지 않은 작품이 많아서 관람 기회가 많지 않고 이번 상영이 아주 귀한 자리가 될 거예요. 작가님도 한국에 방문하실 예정이고요. 이런 프로그램이라면 일하기가 까다로워도 꽤 보람이 있지요.”
다른 극장에서 보기 어려운 좋은 작품을 상영하고 있지만 엠엠시에이필름앤비디오의 관람료는 무료다. 온라인으로 예매하고 가면 경제적 부담감 없이 쾌적하고 편안한 환경에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고물가로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은 시기일수록 무료로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 시민들에게 더 많이 알려져야 하지 않을까. 인터뷰를 하기 전에는 공간성을 감각하며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모습을 많이 떠올렸다면, 인터뷰를 마칠 즈음에는 공공성을 의식하며 일하는 사람으로서의 다부진 자세가 인상적으로 남았다. 우리는 어둑한 공간의 소파에서 일어나 계단을 걸어 내려갔다. 빛이 쏟아져 내리는 넓은 로비에 예술의 공공성을 위해 일하는 사람과 예술을 통해 잠시 여유를 찾은 사람이 나란히 걷고 있었다. 제이는 앞으로 더 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아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그것 또한 공공성의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정성껏 마련해주는 이와 즐거이 향유하는 이가 캐스터네츠처럼 맞물리며 아름다운 연주를 계속 이어가기를.
소설가 이서수 l ‘월급사실주의’ 동인. 소설집 ‘젊은 근희의 행진’ ‘엄마를 절에 버리러’ ‘몸과 고백들’, 장편소설 ‘헬프 미 시스터’ 등을 썼다.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등을 받았다. © 한겨레신문사. 2025. 03. 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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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링크 : https://v.daum.net/v/2025033021050151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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