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독서지도연구회’
독서로 치유하고 성장 돕는 이들이 모인 비영리민간단체
저소득 취약계층에 책 읽는 기쁨 전하며 봉사활동
<편집자 註> ‘강한 시민사회’의 풀뿌리는 비영리 시민단체다. 그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흘리는 땀과 정열 뒤에는 수천 수만 개의 시민단체들이 있다. 그들의 희생은 건강한 사회와 높은 삶의 질을 가능케 한 원동력이었다. NGO저널은 창간 기획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움직이는 시민사회단체를 조명하고, 한국 사회를 이끌어 가는 NGO들이 어떻게 희망을 준비하고, 무슨 고민을 하는지 시리즈로 심층 연재한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
2019년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에 대한 이동진 영화평론가의 이 한줄평이 언론을 타며 때아닌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평이 아닌 문장에 쓰인 단어들이 큰 논란거리였다.
언론들은 "'명징'과 '직조'라는 일반인이 알기 힘든 단어가 연속으로 쓰였다", "한 문장에 한자어가 8개가 들어간다는 것밖에 기억이 안 난다" 등의 커뮤니티에 올라온 누리꾼들의 푸념 글을 인용하면서 이슈는 이른바 ‘명징사태’로 불리며 단순 흥밋거리에서 우리 국민의 문해력 논란까지 이어지는 계기가 됐다.
그 이듬해의 광복절 ‘사흘 연휴’, 재작년의 ‘심심한 사과’까지, 최근 몇 년간 한국사회를 뜨겁게 달군 것 중 하나가 바로 한국인의 문해력(文解力) 논란이다. 급기야는 코미디 소재로까지 등장했다.
쿠팡플레이 ‘SNL 코리아 시즌 3′의 ‘MZ 오피스’ 코너에 등장한 문해력 저하를 풍자 장면이 그것이다. 한 신입 직원이 “십분(十分, 아주 충분히) 이해한다”는 상사의 말을 잘못 이해해 “십분 이해요?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저희를 얼만큼 이해하신다고”라며 반박한다. 어떤 이들은 자조적인 느낌마저 주는 이 장면을 한국인 문해력의 ‘웃고픈’ 현실을 비추는 장면으로 꼽기도 했다.

한국교총이 초중고 교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교사들은 학생들의 문해력 수준이 D등급 이하로 아주 형편없다고 응답했다./사진=픽사베이
한국교총이 최근 전국 초·중·고 교사 1,15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교사들은 학생들의 문해력 수준이 D등급 이하로 아주 형편없다고 응답했다. 문해력 하락의 원인으로는 ‘유튜브 등 영상매체에 익숙해져서’(73%), ‘독서를 소홀히 해서’(54.3%), ‘한자교육을 소홀히 해서’(16.6%) 등의 순으로 꼽았다.
1999년 설립된 한국독서지도연구회(회장 조현숙)의 활동이 근래에 두드러진 것도 이런 현실과 무관치 않다. 한국독서지도연구회는 삶의 변화와 성장을 이끌어주고, 인간적 성숙을 돕는 책의 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누구나 책으로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 모인 비영리민간단체다.

한국독서지도연구회 홈페이지 캡처

1999년에 설립된 한국독서지도연구회(협동조합)는 책의 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아이부터 어른까지 누구나 책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비영리민간단체다./사진제공=한독연

한독연 전.현 운영진들의 모습/사진제공=한독연
한국독서지도연구회는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독서교사와 아이부터 노인까지 독서에 관심 있는 모든 분께 좋은 독서 길잡이 역할을 담당하고자 하는 뜻을 모아 설립했다”며 “23년째 독서전문가, 작가, 학부모 등이 주축이 된 연구원들과 함께 독서교육, 독서치료, 독서 코칭, 독서토론, 소외계층독서문화예술교육 등 독서 전반에 대한 연구와 전 생애 독서프로그램 개발 및 실행 활동을 변함없이 지속해오고 있다”고 소개했다.
단체는 “책으로 긍정적인 삶의 변화와 성장을 경험한 수많은 이들이 독서의 가치와 필요성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책 읽기에 부담을 느끼며 점점 더 책과 멀어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웠다”며 “설립 초기에는 독서교사, 자녀 독서지도에 관심이 있는 학부모, 책을 좋아하는 일반인 등이 참여하여 전문가 세미나 등으로 독서 전반에 관한 이론과 실제 탐구 및 독서수업 역량 강화에 주력하면서 이를 통해 연구원들 대부분이 깊이 있는 배움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고, 독서전문가 학위를 취득하게 되면서 교수, 독서전문가, 아동문학가, 작가 등이 참여하는 전문가 집단으로 성장하게 됐다”고 부연했다.
한국독서지도연구회는 학교 밖 독서교육에 머물렀던 단체의 활동 분야가 교육청, 공공기관, 사회복지기관 등 다양한 외부기관과의 협력 사업을 진행하면서 확장되어 갔다. 대내외기관과의 협력 사업이 급격히 확대됨에 따라 연구원들의 활동영역 확대와 원활한 사업 진행을 위해 단체의 위상 강화 필요성을 느끼고 2013년엔 한국독서지도연구회협동조합(김현애 이사장)을 설립하게 된다.
한국독서지도연구회(한독연)는 “그간 비영리민간단체인 연구회의 활동이 독서전문가로서의 학문적 이론탐구와 역량 강화에 머물러 왔는데, 영리법인인 협동조합의 설립으로 연구원들에게 독서전문가로서 활동할 수 있는 다양한 실행현장과 소득창출 기회가 주어지면서 연구회와 조합이 독서를 통해 배우고 협력하면서 따로 또 같이 성장할 수 있는 전환점이 마련되었다”고 밝혔다.
단체의 주요활동으로는 ▲온·오프라인 독서교육 전반에 대한 교육 및 연구 활동과 독서프로그램 운영 ▲ 독서교재 출판사업 ▲ 공공기관의 전생애 독서문화진흥 및 평생교육 프로그램 ▲ 인문학 프로그램 개발, 운영 ▲대중의 정신건강 증진을 위한 독서치료 프로그램 운영을 다양한 교육현장과 도서관, 복지관, 문화예술시설 등에서 실행해오고 있다.

어르신 독서문화, 지역아동센터 독서코칭 등 한독연과 한독협은 다양한 독서지도 활동을 하고 있다./사진제공=한독연

2019년 정보소외계층을 대상으로 한 독서문화프로그램 '책으로 위로와 희망찾기' 프로그램/사진제공=한독연
이러한 활동 가운데서도 단체가 특히 주력하는 분야는 다양한 신체·경제·환경적 제약으로 독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을 위한 독서 재능기부 활동이다. 저소득층 아동, 청소년, 대안학교, 병원학교, 장애인시설 아동·청소년, 호스피스 병동 입원 환우 등 저소득층과 신체·정서적인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성인 및 성장기 학생들을 대상으로 긍정적인 삶의 변화가 가능하도록 독서 코칭, 통합적 독서클리닉, 상황별 독서치료 프로그램을 실행하고 있다.
한독연은 “독서에 대한 흥미와 심리적 안정 및 자기계발에 도움을 주고자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독연은 독서는 개인의 성장은 물론, 국가발전과도 직결된 문제로 국민의 독서능력 개선이 시급하다고 말했다./사진=픽사베이
독서능력은 개인의 생존과 국가발전에 직결된 문제
한국독서지도연구회협동조합(한독협)의 경우, 설립목표인 ‘국민 독서문화진흥, 소외계층 정보격차해소, 도서관과 독서를 통한 평생학습 유도’를 위해 다양한 협력 사업을 실행하고 있다. 주요 실행사업으로 독서능력, 문해력 향상이나 독서문화예술 향유기회가 적은 소외계층 노인, 다문화인, 미혼모, 보호시설 입소자 및 복지시설 아동, 청소년, 장애인, 저소득층 등을 대상으로 공공기관 및 민간단체들과 협력해 독서복지와 정보격차 개선을 위한 독서프로그램 개발과 운영에 주력하고 있다.
단체는 “구체적으로 서울시 저소득 독거어르신 대상 ‘그림책과 동화로 그리는 나의 미담 협력사업’, ’남양주시민 대상 세월호 참사 ‘위로와 협동의 인문학강의’, ‘명사천 인문학아카데미, 인제군민 대상 독서문화프로그램‘, ‘경기도 정보취약계층 독서 활동 지원 사업’, ‘서울시, 경기도 그룹홈 개인, 집단 독서치료 프로그램‘, 한국문화예술진흥원 청소년 독서문화예술프로그램, 해외입양인을 위한 한국어지도봉사, 경기도민 대상 ’내 생애 첫도서관 연계 독서육아프로그램‘, ’경기도 유아 책꾸러미 독서코칭프로그램‘ 등 국민 누구나 차별 없이 참여하여 독서문화를 향유하며 독서복지와 삶의 질이 향상될 수 있도록 돕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한동연은 “활동하면서 가장 보람을 느꼈던 것은 2003년부터 2004년까지 2년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와 하상시각장애인복지관의 지원으로 실행했던 ‘시각장애아 독서지도 프로그램’으로, 장애아동들에 대한 독서지도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던 때에 수업을 진행하면서 맹학교 아동들의 의미 있는 변화와 성장을 확인하게 되었던 것”이라며 “또 하나는 2009년부터 2018년까지 서울성모병원의 소아암병동 ‘병원학교’ 독서지도 봉사를 진행했던 것으로, 이들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투병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에게 책이 꿈이 되고 힘이 되었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을 잊을 수 없다”고 밝혔다.

디지털 독서환경 변화에 대한 적응력은 계층 간 삶의 격차를 더 벌이고 있다. 소외계층의 낮은 문해력 수준을 올리는 등 디지털 격차 해소 노력이 필요하다./사진=픽사베이
한독연은 코로나19 팬데믹이 불러온 사회변화와 첨단과학기술의 발전양상이 독서를 통한 문해력 강화의 필요성을 높일 것이라고 강조한다.
한독연은 “인터넷 동영상 자료, 오디오북, 전자책, 블로그 글, 웹툰, 증강현실 책 등 온라인 독서 매체의 활용이 급격하게 늘어나면서 천천히 깊이 있게 책을 읽는 시간은 확연하게 줄어들었고, 성인, 아동, 청소년의 문해력이나 독서능력, 생각하는 힘 역시 점점 더 약해지고 있는 것이 다양한 조사결과로 확인되고 있어 우려된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교육 전문가들은 온·오프라인을 넘나드는 소통방식과 빅데이터, 인공지능을 활용한 디지털 독서환경 변화가 계속되면서 정보를 읽고, 이해하고, 정확히 분석, 활용할 수 있는 독서능력과 온라인 자료를 능숙하게 찾아 읽고, 쓸 수 있는 디지털 리터러시(전자 문해력)를 갖춘 계층과 그렇지 못한 계층 간의 삶의 격차와 정보격차가 점점 심화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며 “이 같은 소외계층의 낮은 문해력 수준과 ‘디지털격차(digital divide)’는 한 개인의 생존과 직결되는 문제이자, 사회 안정과 국가발전을 좌우하는 시급한 해결과제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연구회와 협동조합의 연구원들은 생각하는 힘과 자신의 행복을 가꾸는 지혜를 길러주는 가장 좋은 도구는 책이라는 확신으로 변화와 혼돈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독서로 성장하며 책이 주는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돕기 위해 한결같은 자세로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독연은 이와 함께 “낮은 문해력과 독서능력으로 독서가 힘든 아동들에게는 효과적인 독서방법과 책이 주는 즐거움을 경험할 수 있게, 혼란한 사회와 자신으로 힘들어하는 청소년들에게는 새로운 지식과 지혜를 책에서 배우며 진로를 찾을 수 있도록, 삶의 무게로 힘들어하는 성인들에게는 책이 주는 위로를 경험하며 현실적인 과제들을 해결하게, 노인들에게는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남은 생을 행복하게 가꾸어갈 수 있도록 응원하며 책으로 함께 배우고, 나누며 성장해 나갈 것”이라고 했다.
© NGO저널. 박주연 기자. 2023.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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