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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지은 교도소 사람들의 독후감 읽고 깜짝 놀란 이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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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운영자 | 작성일 : 17-12-12 | hit : 1375 | ||
전북 정읍교도소, 매달 '독후감 경진대회' 열어 "많은 난관들과 풀지 못한 수많은 숙제를 껴안고 항상 마음 졸이며 살아왔는데 지금 이렇게 '책'으로부터 해답에 가까운 삶의 많은 지혜를 얻게 됐습니다." 전북 정읍교도소에 수감된 40대 수용자가 공자와 그 제자들의 언행이 담긴 『논어(論語)』를 읽고 쓴 독후감 일부다. A씨가 쓴 이 독후감은 정읍교도소와 정읍 '기적의 도서관'이 지난달 30일 전체 수용자 500여 명을 대상으로 연 '독후감 경진대회'에서 우수 독후감에 선정됐다. 이 대회는 두 기관이 수용자들의 정서 함양과 심성 순화를 목적으로 지난 7월 업무 협약을 맺고 매달 해오는 행사다. 교도소 측은 달마다 수용자가 쓴 우수 독후감 5편을 골라 상을 주고 있다. 포상이라고 해봐야 공중전화 사용, 교도소 문화센터 이용 등 외부인의 시각에선 소소한 것들이지만 최소 몇 달부터 수십년까지 외부와 단절된 채 지내야 하는 수용자 처지에선 결코 작지 않은 혜택이다.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 글을 쓰면 얼마나 잘 쓰겠냐'는 선입견과 달리 수용자들이 쓴 독후감 수준은 상당히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독후감 심사위원을 맡은 김영란(53) 기적의 도서관 관장이 "깜짝 놀랐다"고 할 정도다. 대학에서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김 관장은 도서관 사서(司書)로만 26년간 일해온 '책 전문가'다. 그는 수용자들의 독후감에 대해 "단순히 책을 읽고 느낀 점만 적은 게 아니라 자기 죄를 반성하는 내용이 담겨 울림이 더 크다"고 평가했다. 중앙일보가 교도소 측에서 받은 우수 독후감 사본 2편을 읽어 보니 김 관장의 평가는 과장이 아니었다. 재산 관련 범죄(※교도소 측 요청으로 구체적 죄명은 비공개)를 저지른 두 남성 수용자(기결수)는 수년의 형이 확정돼 1년 넘게 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라고 한다. A씨가 편지지 10장에 손으로 써내려간 독후감에는 공자의 가르침을 통해 자기 삶을 반성하는 내용이 담겼다. A씨는 "책에서 얻게 된 가르침과 깨우침으로 저의 40여년의 시간, 잘못됐던 습관과 생각 그리고 행동을 조금씩이나마 변화시키려 노력한다"고 했다. 그는 『논어』에서 공자와 노나라 임금 정공(定公)의 대화를 언급하며 "최근 몇 년 동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갑질논란'을 떠올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공이 "임금이 신하를 부리고 신하가 임금을 섬기는 일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자 공자가 "임금이 예로써 신하를 부리고 신하는 충으로써 임금을 섬겨야 합니다"라고 답한 구절이다. 그는 "임금이 신하를 함부로 대해 억울한 죽음이나 큰 희생을 치르도록 하는 이야기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역사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라며 "결국 윗사람이 아랫사람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부리면 원한을 사게 되고 그 원한의 칼날은 그대로 자신에게 꽂히게 됨을 공자는 가르쳐주고 있다"고 썼다. 그러면서 A씨는 "저 또한 지금껏 살아오면서 갑질을 해보기도 하고 반대로 누군가에게 당해보기도 했다"며 "상하 관계가 아닌 동반자로 생각하고 진심으로 대하고 행동했더라면 상대에게 상처줄 일도, 내가 상처받을 일도 없었을뿐더러 '지금 나의 소중한 인연이자 재산이었을 텐데'라는 후회와 깊은 아쉬움이 남는다"고 반성했다. 그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발 더 나아가 "사람들은 정치인, 대기업 총수 등 사회적으로 영향력 있는 사람만이 갑질의 가해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관계적 우위를 바탕으로, 가족이라는 이유로, 선배라는 이유로, 나이가 많다는 등의 여러 가지 이유로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 내가 갑질의 가해자이지는 않는지 스스로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그는 『논어』에 대해 한마디로 "사람을 사랑하는 이야기"라고 압축했다. 공자가 일찍 죽은 애제자를 떠올리며 그리워하는 모습, 제자들을 진심으로 가르치려 노력하고 정도를 걷게 하기 위해 꾸짖으며 성심을 다하는 모습을 예로 들었다. 그는 독후감 말미에 "한 권의 책을 읽고 이렇게 글을 쓰는 건 학창 시절이 한참 지나 불혹의 나이가 되어서 겪어보는 아주 신선하고 감사한 경험이었고 '읽고 쓰는 게 이렇게 좋을 수도 있구나'란 생각도 해보게 된다"며 "이런 기회를 주신 분들께 고개 숙여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고 글을 마무리했다. B씨(50대)는 수필 『무소유』를 쓰고 그 글처럼 실천하려 노력한 법정 스님이 생전에 강원도 수류산방에서 쓴 산문 선집 『맑고 향기롭게』를 읽고 독후감을 썼다. B씨는 독후감에서 "법정 스님은 돌아가실 때까지 작은 오두막에서 홀로 살며 청빈과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셨다"며 고승(高僧)에 대한 존경심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지금 나의 욕심으로 인한 잘못으로 나는 세상과 담을 쌓고 이곳 정읍교도소에서 많은 반성과 수양을 하며 수용 생활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B씨는 "조그만 방과 창살이 있는 창문 틈 사이로 비치는 따스한 햇살을 벗 삼아 이 책 '맑고 향기롭게'를 읽고 내 처지에도 다시 살아갈 희망과 행복이 있다는 메시지를 받았다"고 했다. 그는 책에 나오는 법정 스님의 일화를 소개했다. 법정 스님은 어느 해 난초 두 분(盆)을 정성을 다해 키웠다. 하지만 장마가 오던 해 뜰에 난초를 내놓은 사실을 잊고 나중에 난초 잎이 축 늘어져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법정 스님은 이때 집착이 괴로움인 것을 절절히 느끼며 '집착에서 벗어나야겠다'고 결심했다고 한다. B씨는 이 장면에서 "나는 지금 이곳에서 수용 생활을 하며 지내는 동안 물건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살 수 있다는 것과 꼭 필요한 물품으로 살면서 행복해지는 경험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돈만 있으면 '뭐든 살 수 있어' '사람의 마음도 살 수 있지' 등 이런 바보스러운 생각을 해본 적도 있었던 것 같다"고 자기 허물을 고백하기도 했다. 그는 "감옥 속에서 불평·불만만 하며 감사함을 잃은 삶이 아니라 가진 것과 주어진 것에 만족하며 나를 돌아보고 나의 과오를 반성하는 삶을 살아갈 것"이라고 다짐했다. 이어 "지금 교정(교도소 마당)에서 살얼음이 얼어붙는 시기를 보내고 있다. 누구의 도움이나 방해를 받음 없이 홀가분한 마음으로 내 삶을 스스로 끊임없이 가꾸며 챙기고 경험하면서 이곳에서 독서의 행복과 즐거움을 갖고 남은 기간 잘 생활하며 보내야겠다"고 덧붙였다. 정읍교도소에 따르면 현재 교도소는 소설과 인문·사회과학 서적 등 책 5500권을 소장하고 있다. 수용자들은 일과를 마친 뒤에 책을 자유롭게 볼 수 있다고 한다. 김진환 정읍교도소 사회복귀과장은 "독후감 경진대회가 생기면서 수용자들 사이에서 독후감 열풍이 불고 있다"며 "독서와 글쓰기를 통한 교정 효과를 보고 있다"고 전했다. 책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독후감 경진 대회에 출품하는 독후감 수도 늘고 있다. 지난 7월 첫 대회에는 독후감이 13편에 불과했지만 지난달에는 31편이 후보작에 올랐다. 책 장르도 다양해지고 독후감 수준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고 한다. 김영란 기적의 도서관 관장은 "수용자가 쓴 독후감을 보고 그 책을 구해서 보기도 한다. 매달 '어떤 독후감이 올까' 기다려진다"고 말했다. 강도수(59) 정읍교도소장은 "수용자들이 독서를 통해 자신이 저지른 범죄에 대해 뉘우치면서 수용 생활도 더 차분하고 성실하게 한다"며 "관규(官規)도 잘 준수해 다른 수용자들에게 모범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절도부터 살인까지 다양한 죄와 사연이 있는 남녀 500여 명이 수감된 정읍교도소는 지난 2015년 10월 2일 문을 열었다. 전북 지역에서는 구한말에 개청한 전주교도소(1908년)와 군산교도소(1910년)에 이어 100여년 만에 들어선 세 번째 교도소다. 법무부가 404억원을 들여 정읍시 소성면 14만8000㎡ 부지에 건물 전체 면적 2만여㎡ 규모로 건립했다. 감시대가 없는 지상 3층, 지하 1층의 '저층 분산형' 구조로 지어진 정읍교도소는 2009년 착공해 2014년 말 완공됐다. 기사출처 : 중앙일보 정읍지사 김준희 기자 2017.12.1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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링크 : http://v.media.daum.net/v/20171212000205972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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